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호기심을 안고 간 동창회 장소에선 역시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뜻밖의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찬호라는 친구였다. 찬호는 어릴 적 고아원에서 자랐다.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정말 불쌍한 아이였다. 찬호라는 이름도 고아원 원장이 지어주었다고 했다. 늘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별로 말이 없었던 찬호. 하지만 잘 생긴데다 공부를 참 잘했다. 나는 찬호에게 왠지 애틋한 생각이 들어 그와 꽤 친하게 지냈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는 통 연락을 못했다. 그런 찬호를 이번 동창회 모임에서 만난 것이다. 우린 서로 무척 반가워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중후한 찬호의 모습에선 예전의 초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품위와 기품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찬호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나의 물음에 그는 그동안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던 나를 원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찬호는 지금 진주에서 여러 개의 제과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만난 한 상사 덕분이라고 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원망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던 중 그 직장 상사가 찬호에게 노트 한 권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사람이나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자네가 그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적어보게.” 찬호는 코웃음을 치면서 잘못했던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적다가 보니 노트 한 권이 꽉 차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 상사의 말대로 노트 한 장 한 장을 읽고 찢어서 태울 때마다 ‘잘못했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해지고 지나온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찬호는 그 이후로 세상에 대한 원망을 버리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어릴 적에는 불쌍하게만 느껴졌던 친구가 그렇게 성공한 것을 보니 참 흐뭇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삶이 힘들 때마다 찬호를 떠올린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찬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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