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느림의 미학-휴가철에 정춘숙(주부·부곡동 화성아파트) 요즘 사람들은 뭐든 빠른 걸 좋아한다. 느려서 오래 기다리거나 참을성 있게 버티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얼마나 편리한 것들이 많은 세상인지 버튼만 누르면 금방 해결되는 모든 생활의 편리함들이 서서히 우리의 생활을 빠른 즐거움의 중독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하다.
급한 성격 탓에 많이 놀랐던 지난여름이 생각난다. 남편의 휴가에 맞춰 가족여행으로 수영장으로 휴가를 떠났었다. 조금 덤벙거리는 성격이 있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을까. 표를 끊는 입구에서부터 나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한참을 들어가서 준비를 하려는데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돈이 든 지갑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곤란해 하는 가족들을 대표해서 남편이 찾아 나섰다. 설마 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남편은 찬찬히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자면서 매표소로 뛰어갔고 난 극구 아니라며 퉁퉁 부은 얼굴로 아이들과 주위를 찾고 있었다. 한참 뒤에 남편의 손에는 나의 갈색 지갑이 들려 있었고 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들떠 있었으면 이런 실수를 했을까. 매번 반성을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할 말이 없었다. 물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니 남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몇 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혹시 먼저 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냥 수영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도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내가 또 성급히 움직였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벌써 오늘 실수만 해도 몇 번째인가. 딸아이 보기도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송을 해 보려 했지만 그것 또한 망신스러운 일 같아 참아 보기로 하고 찾아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 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내게 실망해 허탈해 하는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이 때문에 화장실에 갔다가 잠시 늦은 그 순간을 못 기다리고 내가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서로를 찾아 헤매다 놓쳐버린 아쉬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과장된 웃음까지 선사해야 했다. 왜 이리도 급해 버린 걸까. 수없이 반성하고 결심하고 그날은 정말 한없이 나 자신이 작아지는 날이었다. 수영장 이야기만 나오면 난 입을 다물고 만다. 아이들은 지금도 엄마가 지갑을 잃어버린 이야기며 서로 엇갈려 헤맨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놀려댄다. 예전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밥도 아주 느리고 천천히 먹고 여유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내 모습이 이상하게 바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적 여유를 찾지 못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느리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조금의 느림도 허락지 않는 것 같다. 남보다 빨리 먼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느린 음악을 들으며 한 자 한 자 느린 시 감상을 하고 느린 식사를 하고 하루의 일을 느리게 반성해 가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 빨리빨리 라는 말을 올 휴가 때는 가족여행에 동반하지 않을 것이다. 서서히 내 몸 속에서 내 머리 속에서 퇴출시켜 버릴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느림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올 휴가를 다녀오고 싶다. 다시 또 작년처럼 휴가를 망친다면 내가 우리 가족에게서 퇴출당할 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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