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미(시인·구성면 출신)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건너편 조그마한 화물차 짐칸에 흑염소가 실려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염소의 슬픔으로 풀어진 노오란 눈동자와 이미 반은 죽음 너머의 세상을 예견한 듯 순순히 끌려가는 자그마하고 순한 짐승의 몸뚱이를 보는 순간 가슴 가득 슬픔의 덩어리가 조용히 녹으면서 어린 시절 예사롭게 스쳐지나간 기억의 한 토막이 불쑥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는 알뜰살뜰 살림을 하면서 조금씩 저축하는 재미를 느끼고 계셨다.
아버지의 봉급으로 다섯 남매를 키우시고도 언제나 가계부를 셈하실 땐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돈이 조금씩 남는 것이었고 그 돈을 저축하여 또 목돈으로 만드는 재미란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기엔 충분했고 그러기에 어머니는 부업을 하면서 힘드신 기색이 전혀 없으셨다.
어머니의 부업이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부분이 가축을 길러 장에 내다 파시는 것이었다. 시골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번화한 도회지도 아닌 우리 집은 마당이 조금 넓은 편이었다. 그 마당을 활용하여 돼지우리를 만들고 돼지를 키우기도 하셨고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달걀을 내다 팔기도 하셨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한켠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짐승은 흑염소였다. 어머니는 어느 날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사오셨다. 흑염소가 돈이 된다는 소리를 어디서 듣고 오신 모양이다. 새까맣고 반질반질하고 토실토실한 그 새끼염소 두 마리는 어느새 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나는 그 이쁘고 귀여운 염소 두 마리의 목자가 되었다. 시간만 나면 뒷동산으로 새끼염소 두 마리를 끌고 가 풀숲에 매달아 놓고 해가 뉘엿뉘엿해 질 때 까지 네 잎 크로바를 찾으며 동요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그 염소를 이끌고 집으로 와 우리에 매달아 놓고도 문득문득 보고 싶어 가보기도 했다.
염소는 잘 자라 주었고 그 중 한 놈이 새끼를 배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싱글벙글 좋아하셨고 새끼를 밴 나의 염소는 자꾸만 배가 불러왔다. 어머니는 이제 기르시기에 벅찬 모양이었다. 오랜 옛날이었지만 신식 공부를 하셨고 곱게 자란 어머니셨기에 궂은 일에는 단련이 덜 되신 터라 자꾸 커가는 염소를 키우기엔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염소가 커가며 내 힘엔 좀 부친 일이 되었다. 그보다도 결정적으로 염소를 장에 내다 팔기로 결심한 것은 염소가 이젠 꽤 값이 나가게 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자란 두 마리의 염소를 끌고 장터에 가셨다. 염소가 울고 있었다. 팔려가는 것을 알았던지 그 날 아침은 풀을 먹지를 않았다. 새끼를 배서 잘 걷지도 못하는 암놈과 그 곁에서 속수무책 끌려가는 수놈과 모두 불쌍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 뭔가 내 속에서 정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때가 되면 정리하고 끊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사람의 세상과 동물의 세상의 경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흥정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달아나듯 그 곳을 떠나 먼저 집으로 왔다. 아, 오는 버스에 앉아 그 조그마한 염소가 팔려가는 것을 보며 나의 지난 기억의 필름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염소의 진정한 목자가 되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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