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주부·신음동 주공그린빌)
태권도장에서 땀투성이가 된 아들과 딸이 돌아왔다. 방학 한 달을 쉰 터라 아들은 여기저기가 쑤신다며 엄살을 부린다. 하지만 무정한 엄마는 아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걸 아이에게 각인 시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 불편함을 핑계 삼아 닌텐도의 필요성을 역설할 게 뻔하니까 말이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양떼를 몰 듯 끈적거리는 아이들을 세면장으로 보낸다.
못 미더워, 싫다는데도 억지로 머리를 감기고 씻기다 보면 어느새 나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일은 문화원 시 창작 수업이 있는 화요일. 시를 공부하러 가기 전날이면 아이들을 씻기면서 나도 간절히 샤워가 고프다. 벌써 4년째인데도 아직 첫 시간, 첫 마음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게도 시에 대한 그 어떤 열망이 존재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주인의 성격처럼 대충 차고앉은 세면도구들을 둘러본다.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지만 내 기준에 의하면 며칠은 더 견뎌도 될 것 같은, 하지만 락스를 풀어 박박 닦아내고 싶은 도구들. 그 도구들을 윤기 나도록 문지르듯이 나는 나를 씻긴다.
어쩌면 그것은 신녀가 하늘의 뜻을 구하러 신전에 들기 전 부정함을 틀어내고 신통한 괘를 기원하듯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여 내 안에 잠자고 있을지도 모를 번쩍이는 문장들을 깨워 낼 어설픈 습작생의 주술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태함에 모든 걸 놓쳐 버리고 주저앉혔던 자아를, 새롭게 태어나길 갈구하여 부지런히 위장시키는지도.
식탁을 정리하는 나를 무뚝뚝한 남편이 본다.
“좋은 일 있어?”
“그럼, 나쁠 게 뭐 있겠어. 신랑 착실하지 아이들 예쁘지 매일매일 기분 짱이지.”
아무래도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상큼함(?)의 정체를 캐고 싶은 것인지 웬일로 관심까지 보인다. 엄마와 아빠의 짧은 대화 중에도 아이들은 안방 침대를 오르내리며 방 안을 휘저어 놓는다.
베개와 이불이 널브러져 있다. 수십 번을 얘기해도 유독 엄마 말은 들은 둥 마는 둥 아이들은 제 놀이에 열중인데 이럴 때면 애들이 이 엄마란 존재를 아주 하잖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여 울화가 치민다.
여기저기 던져 놓은 베개를 침대 위로 다시 주워 올리고 아이들을 거실 좌탁 앞에 앉혔다. 엄마가 서두르기 전에 결코 알아서 책을 드는 법이 없는 아들과 딸을 닦달하여 숙제를 시키고, 딸에겐 엄포를 놓아 영어 학습지를 강제로 안긴다.
‘후유, 다른 엄마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스스로 자조하면서 아이들이 보란 듯이 아주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듯 A4용지를 든다.
“봐, 나도 공부하잖아.”
시에 있어선 엄마도 너희와 같은 학생이란 사실을 강조하며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부단히도 얘기한다.
아침이 되었다.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깨우랴 밥을 차리랴 문화원에 가지고 갈 준비물을 챙기랴 화요일이면 바람난 살구꽃처럼 마음이 부산스럽다. 평소엔 내게서 멀리 앉은 화장품들을 챙겨 온다. 이 날 만큼은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되어 아름답게 변신시켜 주기를 원한다.
얼굴 위에 덧씌워진 그 불편한 느낌이 화요일엔 왠지 예쁜 시 한 수에 몸 담근 것만 같이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