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남 (시인·신음동) 그들은 흡사 키스할 자세였다. 사람들이 연신 오가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굴과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계속 지켜보았다. 안보는 척 몸은 TV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그녀의 입이 남자의 입과 마주치지 않고 여자의 손이 남자의 눈가로 갔다. 씩씩해야 할 군인이 흐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남자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고 여자는 남자의 눈물을 닦으며 달래느라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많이 바뀐 모습이다. 예전에는 대부분 여자들이 눈물을 훔치며 헤어짐을 슬퍼했다면 지금은 왠지 씩씩해진 느낌이다. 오히려 군인의 약한 모습이 안타깝고 새로웠다. 저래가지고 제대로 군 생활이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마 나도 남자는 울음을 좀 참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생각이 박혀 있었나보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에게 그 얘기를 하며 우는 남자에 대해 물었다.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의 울음이 당연하다고 했다. 슬프면 우는 것이라고...
우리는 감정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숨길수도 있음을 미덕으로 알았다. 특히 남자는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참기도 하고 참는 척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하고 솔직해진 것이다. 존 가트맨의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보면 감정코치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유년 시절 우울한 감정 해소 능력이 부족하면 훗날 약물이나 알콜 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하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이 가트맨 박사의 이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성격 형성에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4가지 부모의 유형이 있는데 부모들은 감정 코치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형을 분류해 보면 첫째, 축소전환형 부모이다. 자녀의 부정적 감정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울며 버티는 아이에게 이유보다는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과자로 살살 달래거나 재미있는 놀이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째, 억압형 부모이다. 자녀가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비판하고 감정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벌을 주기도 한다. 투정 부리는 아들을 혼내면서 그 감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말 안 들으면 더 혼내거나 맞게 될 거라고 협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강조되어 왔다.
셋째, 방임형 부모이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거나 한계를 제시하지 못한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위로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대부분 아이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전제하에 아이의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다.
넷째, 감정 코치형 부모이다. 방임형 부모처럼 아이의 불만에 공감하는 것은 같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방법을 일러준다. 불만을 인정하고 있는 감정 그대로 느끼도록 해서 슬퍼하는 아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타당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잘 우는 사람은 건강한 것이다. 마구 떼쓰며 우는 것이 아니라 울어야 할 때 충분히 우는 것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두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서 쌓아두는 것보다는 잘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군인의 울음은 자신의 불안을 모두 해소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자신과 그녀에게 분명히 좋게 작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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