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상(수필가 ·광기교회 장로) 벌써 들판에는 잘 익은 곡식들이 황금빛 파도로 출렁이고 온 산하는 울긋불긋 황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 곱던 황갈색 나뭇잎도 바삭바삭 소리나는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모든 이로 하여금 잠 못 이루게 하고 상념의 세계로 몰아넣을 이슥한 가을 밤 ! 더더구나 하현달이 늦게 솟아 차가운 달빛이라도 비칠 양이면 낙엽은 더 속절없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비운을 보여주게 되는데...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앞당겨 걱정하면서 더욱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 하는 것은 나이 탓일까? 조선시대 기생으로 일생을 보낸 황진이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내 언제 신의(信義) 없어 임을 언제 속였관데/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를 안 지켜 임을 속였기에 달이 기울고 날은 지새어 가는데 그리운 임은 올 기척이 전혀 없네. 가을바람에 지는 잎 소리가 어쩌면 임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 설레는 이 마음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나.’
대충 이런 내용의 짧은 시조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님을 기다리는 황진이의 그 솔직한 심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번뜩이는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내용 중 ‘내 언제 신의(信義)가 없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 환경으로 보아 기생에게 신의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될 수만 있으면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기생의 본업인데 신의란 단어가 어찌 황진이에게 해당되겠는가마는 떠나간 임이 돌아오지 않는 야속한 임을 결코 탓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가 신의가 없어 그러한 게 아닌가 하고 자기 반성에 초점을 맞추는 갸륵함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면서 언제이건 돌아오리라는 소망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가을바람에 지는 잎 소리를 임의 발걸음 소리로 착각할 만큼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신의’란 말의 뜻이 `믿음‘과 `의리’라 볼 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포착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구나 언제부터인가 싹이 튼 불신풍조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기생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심지어 종교에까지 온 나라가 불신으로 가득한 지금, 신의를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지만 황진이의 이 시조 한 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다.
요즈음 연일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국회 청문회 광경을 보면서 정치판의 불신에 대한 기사도 이제는 식상하여 아예 읽지도 않고 TV에 그들의 얼굴이 나오면 채널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국민이 많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 맘 때쯤이면 남에게 손가락질만 할 것이 아니라 가슴에 손을 얹고 황진이의 갸륵한 마음처럼 금년 한 해 동안 내가 과연 얼마나 신의를 지켰는지 한 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
직장 동료에게, 벗에게, 부모님께, 자녀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나와 관계한 모든 이들에게 내가 쏜 화살의 수를 헤아려 보고 반성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 화살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금년 가을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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