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賞)의 계절의 문재원 (향토사학자) 상(賞)의 계절이다. 한해가 다 갈 무렵이면 이곳저곳에서 주는 상들이 많다. 나라(정부)에서 수여하는 것 만해도 만만치 않아 훈·포장과 표창 등 여러 가지 상의 숫자가 오십 만 개가 넘는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상(賞)이란 받으면 기분 좋은 것 이다. 그러나 받고 싶다고 누구나 다 받을 수는 없다. 상이란 주는 곳이나 받는 사람이나 주고받는 것을 보는 사람들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라야 먼 훗날까지 현양(顯揚)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하지 않아 조선조 정란공신들에게 내린 상이 600년 동안이나 논란이 되어 현재까지 법정싸움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태종 이방원이 정란을 일으키고 정란 1등공신인 한명회에게 내린 상이 그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부당했다고 법정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이란 먼 훗날까지도 그 공적이 빛이 나는 것에만 진중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마천이 남성을 거세당하면서도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소신을 가지고 썼다는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오기가 무공(武功)을 세운 부하장졸들을 격려하며 순시를 하다가 발에 종기로 고생하는 병사를 발견하였다. 오기는 그 자리에서 종기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뽑아 주었다. 감동하여 어찌 할 줄 모르는 광경을 본 그 병사의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천한 우리 같은 병사의 고름을 장군님이 입으로 친히 빨아 주셨는데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그리 슬피 우십니까?”고 물었더니 그 어머니가 “이 애의 아버지도 오기 장군님의 부하였는데 불과 작년에 그 양반이 등창을 앓아 애를 먹다가 그때도 오기 장군님이 종기를 빨아 주셨습니다. 그러다 그 양반은 오기 장군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전쟁터에 나가 앞장서서 싸우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오기 장군님이 아들놈의 종기를 빨아 주셨으니 어찌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남편 잃고 이제 자식까지 잃게 생겼으니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상의 숨겨진 다른 뜻이 드러나는 고사이다. 상이란 순수해야 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상을 귀하게 다루었을 뿐 아니라 그 대상자의 생전에 상을 내리는 것을 극히 드물게 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었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밝혀 주고 있다.
더구나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수여하는 상이야 말로 귀히 여겨야 할 뿐 아니라 어떠한 명분으로든 남발은 그 사회에 위화감을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상이든지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이번 ‘자랑스러운 김천시민상’의 대상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주는 곳에서는 권위가 있어야 하고 받는 이는 그 가치를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
흔히 정부에서 주는 것은 가치가 있고 지방에서 받는 것은 하찮은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라. 국민 사천 오백만 명이 대표로 주는 상이 오십만 개가 넘는다면 한 개의 상이 국민 몇 명이 주는 것이 되며, 십오만 명의 시민의 이름으로 읍면동에 한명씩 받는 상은 시민 몇 명이 주는 상이 되는가? 또 지방에서는 주는 곳과 받는 사람의 행적들을 주고받는 것을 보는 시민들이 너무나 잘 아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여하는 상은 더욱 가볍게도 남발도 하지 말아야하며 진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우리 김천에서 시상하는 모든 상은 주는 곳에서는 명분이 분명히 서고, 받는 이는 겸양과 또 다시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받을 것이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축하의 박수를 쳐 먼 훗날까지 빛이 나는 시상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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