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상 (수필가·광기교회 장로) “내 일찍이 시골에 묻혀 누렁이(黃狗)와 더불어 사냥이나 하고 살았더라면 오늘 이런 참변은 면했을 것인데…결국 내 욕심이 나를 망쳤구나. 너희들은 절대로 아비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아다오.” 한때 천하의 대권을 잡아 권세와 명예와 부를 한 손에 잡고 영화의 극치를 누렸던 중국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정적(政敵)에게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이 고사를 일컬어 황구지탄(黃狗之嘆)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들 있지만 그러나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의 초기 단계에서 오는 단순한 실패와 후회는 그 자체가 교훈과 바탕이 되어 성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영영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저질러 급기야는 인생을 파국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일들을 우리는 수 없이 많이 보아 왔다.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자신의 앞길에 훌륭한 자대로 삼아야 하는데도 막상 자기 앞에 닥치는 일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더 큰 명예와 더 큰 부(富)와 더 많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정도(正道)를 벗어나 사로(邪路)를 걷다가 황구지탄을 읊조리며 “내 욕심이 나를 망쳤구나”하면서 눈물을 뿌리는 사람들…. 여기서 우리는 오직 나 하나 만의 이득만을 탐내는 자는 언젠가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의 후회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가치 있는 후회가 있다.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을 보면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했던 카튜사를 버림-로 파멸한 여인(카튜사)에게 보상해 주기 위해 시베리아 감옥까지 따라가는 등 안간힘을 쓰는 네오돌프의 후회는 진정한 뉘우침으로 자신이 저지른 허물을 통하여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 자체가 바로 후회의 미학(美學)이라 할 수 있다. 후회는 후회로 끝나면 가치가 없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네오들프처럼 미래지향적인 의지로 바꾸어 갈 때 후회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은 후회를 가르치는 것”이라 하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살아 온 것 같다. 돈 만 있으면 무조건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해왔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밀치고라도 윗자리에 올라서면 입신출세한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진리가 얼굴을 내 밀게 되는 날 바벨탑의 영광은 한낱 허황된 꿈이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무분별한 출세주의는 인간을 파멸의 낭떠러지로 추락시키고야 만다. 2010년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지났다. 비록 크게 출세를 하지 못 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 해도, 많은 권세를 누리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부활’에서의 네오돌프처럼 초기 단계의 후회와 실패를 통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이웃도 돌아볼 수 있는, 자신의 삶도 함께 잘 꾸려 나간다면 이것이 진정한 가치 있는 후회의 삶이 아닐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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