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오후에 초등학생 딸들과 함께 학교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몸무게가 가벼운 둘째 딸과 시소 놀이를 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시소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나는 땅쪽에만 있게 되고 딸은 하늘 위로만 가고 재미도 없어 일부러 장난삼아 시이소를 땅에 쿵쿵 찧으니 딸은 엉덩이가 아프다고 난리였다. 한참을 장난치며 노는데 첫째 딸이 맞은편에 합류해서 시소의 균형이 어느 정도 잡혀졌고 그런 후로는 양쪽이 번갈아가며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시소 놀이의 묘미를 맛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맡고 있는 업무로 인해 다문화가정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지닌 남과 남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관점에서 출발해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다문화의 장점과 독창성을 향유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남이 나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배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서로에게 고통을 주다 결국에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가출이나 이혼으로 이어져 家庭의 문제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불행한 가정도 접한다. 일반적 관점에서라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다문화가정이 행복하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문화가정이 불행해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고 본다.
결혼이주여성을 만나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넋두리는 자신을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살기위해 온 한국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는 말이다.
이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남편이 돈을 주고 사온 여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자녀를 낳아서 키우고, 집안 살림살이나 하는 여자! 라는 마치 중요한 기계에 보조로 사용되는 보조소품으로만 취급당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말로 표현 할 수 있다.
과연 다문화가정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오히려 일반 가정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시소 놀이기구의 원리를 생각해 본다면 간단하고 쉽다.
농촌 ․ 도시 서민층의 결혼 정년기를 넘긴 남성이 20대 초반의 외국 여성과 맞선 본지 불과 2,3일 만에 남성이 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해서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형식적인 결합을 한 다문화가정은 그 시작부터가 균형과 조화로움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불균형과 부조화는 함께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게 넘쳐나는 것이 무엇이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넘침은 덜고 부족은 채워주어 균형을 잡아주면 되는 일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하나의 가정이라는 좁은 사회적 단위 내에서 상호 의지 하면서 독창성과 다양성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가정은 없을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다문화가정이란 불균형과 부조화에서 자랐지만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이제는 다문화가정이 불균형과 부조화로 불행하다! 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름다운 어울림’이란 말이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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