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꽃 강기석 (지동초등학교 교장) 나는 참꽃을 좋아한다. 우선 꽃 색이 마음에 든다. 참꽃 색은 좀 연하면서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에서 진한 붉은 빛나는 보라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푸른빛이 많을수록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지고, 붉은 색이 많아질수록 수줍음의 고통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소박한 꽃잎도 좋다. 빨랫줄에서 금방 걷어 온 무명 저고리 앞섶처럼 조글조글한 꽃잎에는 산골 계집아이의 수줍은 죽은 깨 몇 점이 박혀있고, 투명한 햇살이 남아있는 꽃잎을 입안에 넣으면 혓바닥이 아르르한 느낌이 좋다. 봄만 되면 참꽃을 무척 기다렸다. 십리나 되는 학교 길을 오가면서 아직 겨울 냉기가 남아있는 소나무 사이를 기웃거려도 보고, 큰 바위 섶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막상 눈길이 마주치면 수줍어 애써 모른 체 했다. 한꺼번에 다 다가가지 못하고 산 그림자가 한참 길어질 때까지 두고두고 조금씩 보고 또 보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참꽃이 그리 흔치 않았다. 참꽃나무도 좋은 땔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절벽이나 바위틈에서 궁상스럽게 자란 놈만이 가지 끝에 듬성듬성 몇 송이 꽃을 피울 뿐이었다. 참꽃을 실컷 누리지 못한 아쉬움으로 봄날 내내 내 가슴은 텅텅 비었다. 뻐꾸기가 우는 날에는 더 많이 허전하였다. 뻐꾸기가 울면 봄이 간다는 동요 가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날, 뻐꾸기가 유별하게 울던 날,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다래끼 속에 키 낮은 참꽃 한 줌 들어있었다. 참꽃을 좋아하는 자식 놈이 너무 안타까워서 허리가 펴지지 않는 피곤한 몸으로 꺾으신 꽃이다. 마음결이 여린 자식 놈을 주려고 봄볕에 그을리고 봄바람에 터져서 풀질하는 솔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꺾으신 꽃이다. 가늘고 짧은 회백색 가지에 붙어있는 파리한 꽃잎이 차라리 서러웠다.
나는 그 꽃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이다 병에 꽂아서 사랑채 마루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아주 작게 웃으셨다. 그 날 밤, 나는 어머니 웃음에 기대어 잠을 잤다.
어머니는 양반 가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철이 들기 전에 외할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외로웠다. 성장하여 친정보다 살기 어려운 농사짓는 집안으로 시집 온 것도, 엄한 남편을 만난 것도, 마음 좋은 덕에 맏며느리가 아니면서 시부모를 모신 것도, 자식이 많아 잘 먹이고 잘 입히지 못한 것도 어머니를 외롭게 했다. 어머니의 외로움은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토록 가슴을 참꽃 색으로 물들이면서 사셨다.
어머니는 외로울 때면 낮은 목소리로 ‘클라멘타인’을 부르셨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지난겨울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참꽃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를 남겨 두고 떠나셨다. 뻐꾸기가 우는 날이면 참꽃 없이는 잠 못 드는 나를 남겨 두고 떠나셨다.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나를 남겨 두고 떠나셨다. 올해도 참꽃이 많이 피겠지. 무리를 지어서 피기도 하겠지만 온 산이 아예 참꽃 색으로 물든 곳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 참꽃을 꺾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참꽃도 꺾고 싶지 않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한 것은 참꽃이 아니라 참꽃 색으로 물든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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