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어린이날 추억 함종순 (주부·개령면) 내가 어릴 때는 어린이날이 집안 일 돕는 날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은 학교 쉬는 날만 기다렸던 것 같다.
기계가 없던 시절 소로 논밭을 갈고 인력으로 일을 할 때라서 일철에는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5월.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아까워서 어떻게 일을 시켰는지 신기할 정도로 초등학생들이 일을 잘 했다.
어떤 친구들은 동생 돌보고 밥하고 빨래 집안 청소는 물론 들에 나가서 밭 매고 모심기도 했다. 그런 산골에도 교회가 있었는데 어린이날 소풍을 가기위해 목사님 사모님이 집집이 다니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데려갔다.
다른 친구들은 어린이날만은 보내 주는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어림도 없고 “가긴 어딜 가 오늘 아버지 논 써리는데 새참 해 가야지. 해가 봉당 끝에 오면 국수 삶아오너라”
다른 친구아버지는 술을 드시기 때문에 새참으로 막걸리 받아 가면 간편한데 우리 아버지는 술을 안 드셨기 때문에 국수를 삶아 갔다. 어린나이에 불 때서 국수 삶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 때어 눈물 콧물 흘리며 국수 삶아 건져 간장 만들어 머리에 이고 한손에는 물 주전자 들고 아버지께서 일하는 논으로 갔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소를 몰아 목이 다 쉬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소풍가고 동네 애들이라고는 안 보이는데 국수 삶아 봄볕에 논으로 가는 나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엄마는 아버지 새참이나 해 드리지 남의 일은 가 가지고 소풍도 못 가게 해”하며 혼잣말을 하며 국수를 삶아 가보니 아버지께서 다리 둥둥 걷고 얼굴에는 논흙이 틔어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린이날 소풍가는 친구들이 부럽고 소풍 못 가서 속이 상했지만 아버지께서 고사리 손으로 해간 새참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부모님 심부름을 잘 했다 싶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옛날 어린이날 국수 삶아 논으로 갔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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