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화가 있다. 절의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어린 사미는 죽 둘러앉은 스님들에게 국을 나눠 주는 중이었다. 사미는 갑자기 깜짝 놀라 눈을 다시 닦고 국통을 들어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국통 속에는 생쥐 한 마리가 들어 있지 않은가. 둘러보니 모든 스님들은 맛있게 음식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어린사미는 시치미를 떼고 생쥐를 슬며시 건져 자기의 국그릇에 넣고는 아무 일 없는 듯이 국그릇을 손으로 가린 채 음식을 먹었다. 이렇게 해서 아무 일 없이 발우공양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이때 조실스님이 어린 사미의 행동을 유심히 보다가 사미를 불렀다. 조실스님은 조용히 그리고 엄숙하게 물었다.
“아까 내 보니 너는 손으로 국그릇을 가리고 음식을 먹던데 까닭이 무엇이냐?”
한참 머뭇거리던 어린 사미는 결심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자 조실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주는 것만이 공덕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말없이 덮어주는 것도 공덕이 되느니라. 너는 남의 허물을 대신 먹은 것과 진배없느니라”하고 크게 칭찬해 줬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다. 과연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자비인가. 종교도 많고 좋은 말들도 많지만 정작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과 종교인만 양산하는 세태다. 이 어린 사미승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곤욕에 처하는 일을 감당했다. 한창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이 좋을 대중들, 그들을 위해 사미승은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모든 것을 짐 지우려는 태도야말로 자비의 실천이요, 생활인의 미덕이 아닌가.
이 땅은 진즉부터 선비의 나라요 예의의 나라며 군자의 나라였다. 그런데 신 서구문명이 들어와 판을 치면서 우리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만 이해되어 버려지고 있다. 온고지신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무조건 돈과 명예만 추구하는 것만이 잘 사는 게 아닐 것이다.
나라의 정치가 온통 혼란스럽다. 더구나 정치나 사회에서 돌아가는 세태가 어린 사미승만도 못한 졸부가 얼마나 많은가. 개인의 이익과 이해관계의 특정 집단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가 행해지고 중상모략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논어’에 말하기를 군자는 의를 항상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하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우리 사는 세상이 군자다운 사람보다는 소인과 졸부가 판을 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파일이 다가오고 선거철이 왔다. 진정한 자비를 되새겨 보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나는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했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남의 작은 허물도 덮어주지 못하는 종교인, 상대방의 없는 것까지도 ‘설(設)’이라는 이름으로 ‘하더라’ 라는 말로 비방하고 중상해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선거철의 악습은 우리 지방에는 없기를 바란다. 어린 사미승만도 못한 어른, 더구나 지도자가 많다면 이는 모두의 불행이요 슬픈 일이다.
입하가 지났으니 이미 여름이다. 이 땅에도 자비가 넘치고 또 타인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