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자>란 의미
흔히들 잘 먹고 잘 살자는 말을 합니다. ‘잘 먹고 잘 살자’란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먹고’란 말 속에는 경제적 욕구의 충족을 의미하며, ‘잘 살자’란 말 속에는 삶의 질적 향상, 곧 문화적 욕구의 충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의 궁극적 가치가 배불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이성적 사고, 즉 문화의 충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문화의 충족, 곧 삶의 질을 강조한 말 중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메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인정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5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이러한 욕구의 단계에서 알 수 있듯이 생리적, 안전의 욕구가 경제적 욕구의 충족(잘 먹고)을 의미한다면 사회적, 자아실현의 욕구는 문화적 욕구 충족(잘 사는)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서로 이질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하고 잘 먹기 위해서는 잘 사는 법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상호보완적이며 상호협력적 관계인 것입니다.
작금의 세태를 보면 경제적 욕구 충족에 너무도 집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경제적 논리만이 최선이라는 발상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문화적 가치를 배제한 경제적 논리는 눈앞에서 이익만을 쫓는 현실적 처방은 될 수 있지는 모르겠으나 시대를 앞서가는 미래지향적 시대정신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문명은 유물, 문화는 유의>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박사는 경제적, 문화적 욕구를 문명과 문화로 구분하고 문명은 유물(有物)로, 문화는 유의(有意)로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정의한 이유는 문화가 없는 문명은 없고, 문명에는 반드시 문화가 떠받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배용준이라는 탤런트가 있습니다. ‘겨울연가’ 드라마 한 편으로 일본에서 욘사마라 불리어지며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습니다. 배용준의 이름, 곧 욘사마는 유의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욘사마의 이름을 내건 제품은 유물에 해당합니다. 욘사마란 유의를 유물로 만들어내 일본에 내다팔 경우 그 유물의 파급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이어령 교수가 강조하는 문화의 중요성인 것입니다.
<지방문화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바야흐로 지방화시대, 세계화 시대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치열한 생존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1차 산업, 2차 산업의 시대를 거쳐 3차 산업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지식정보화 시대가 만들어낸 최첨단의 IT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머지않아 다양한 문화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화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시대가 조만간 펼쳐지리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지방문화를 결집하고 재생산하여 세계화시장에 경쟁력 있는 문화의 상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정신이며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내세우는 문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나라에서 내세우는 김천의 문화상품은 무엇입니까? 김천의 전체 예산중에 문화예술분야에 차지하는 예산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그 문화예술분야 가운데 지역의 정서를 담은 창작예술 활동은 얼마나 됩니까? 예술분야에서 과연 지방화의 개념이 있습니까? 서울에서 공연 중이거나 전시 중인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공연하고 전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중앙집권식 문화적 종속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화예술분야에서 지방화를 육성시키고 활성화해야 하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지방의 문화적 가치가 곧 그 지방의 브랜드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지역예술인들 역시 지방화의 마인드를 가지고 지방의 역사와 특성, 지리적 여건, 삶의 모습 등을 담은 지역정서를 표출해내려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방의 문화는 일부 예술인들만이 누리는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할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더 이상 농로포장의 가치와 문화의 가치가 비교되는 논리의 비약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