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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 특집인터뷰(3)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상북도지부 김천시지회 최태영 회장
김민성기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0년 06월 10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동족상잔의 비극


 


5월 20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이로써 북한은 6.25의 비극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뇌리에 다시금 각인시켜 준 셈이다.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 올해.


전후세대에게 6.25전쟁은 낯설기만 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조선인민군(북한군)의 남침으로부터 발발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말미암아 남한과 북한이라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만들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관 벽면에는 6·25전쟁에서 희생된 미군을 기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지금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의 대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정작 전쟁당사자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참전용사나 유가족들에게 그들의 희생에 합당한 보상이나 대우를 해주고 있는가? 대부분의 유공자들은 적은 연금과 수당에 의존해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6.25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낸 노병과 유족(유자녀)들을 만나보았다.


 


"인간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총알이 인간을 피해가야 합니다."


 












최이병에게 오늘은 두 번째 실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첫 번째 전투에서 빗발치는 총성과 하나 둘 곁에서 쓰러지는 장병들을 이미 봐버린 그에게 이번 전투는 두 배 세 배의 공포심을 안겨줬다.


순간 그는 극심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왼쪽 허벅지에 피가 배어나왔다.


총알이 관통한 모양이다.


일어서보려 했지만 관절이 부러졌는지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는 전우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전세는 이미 패색이 짙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미국인선교사에게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간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총알이 인간을 피해가야 합니다” 하느님이라는 신의 손에 인간의 목숨이 좌우된다고 했던가.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기도라지만 최 이병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상황에 다리뼈가 부러진 군인이 살아 도망치기에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두 남동생만이라도 살아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내용을 바꿨다.


 정신이 또 아득해진다.


 -


 전쟁이 나던 해 구성면사무소에 다니고 있어 피난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대피도 못하고 인민군에게 그대로 붙들려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영 낙동강 전투에 투입됐다.


 총성이 빗발치던 전투 중에는 도망가려고 움직였다간 총에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인민군들이 하나 둘 후퇴하는 중에 꼼짝 안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창영에서 낙동강쪽으로 20리 정도 떨어진 마을로 숨어들었다. 그러다 미군에게 붙잡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다. 거기서 미군의 심사를 통해 석방이 됐다.


 그리고 몇 달 뒤 52년 음력 9월 스물 두 살의 그에게 이번에는 한국군에서 영장이 나왔다.


 제주도 훈련소에서 한국군 8사단 10연대로 배치돼 지금 중공군 최종공세인 7.13전투에 나오게 됐다.


 -


 눈을 떠보니 야전당가(들 것)에 실려 중공군의 포로로 후송되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휴전됐다고 했다.


 평양 승호리 포로임시집결소에서 북한의 월북회유를 뿌리치고 남쪽으로 돌아왔다.


 회원수 423명의 김천상의군경회 회장을 36년째 맡고 있는 최태영(80세)회장(사진)의 회상이다.


 “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하느님의 큰 은혜요, 두 번째는 저희 할머니덕분입니다. 할머니는 제가 군대에 간 이후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뒷산에 올라 얼음을 깨고 몸을 깨끗이 한 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셨답니다. 제가 돌아온 후 동네사람들이 다 할머니 덕분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평생 불심으로 사신 할머니지만 제가 전투중에 하느님께 기도드린 이야기를 드렸더니 바로 천주교로 개종하셨습니다. 지금 저희 둘째아들도 신부가 됐습니다”


 전쟁은 최 회장의 한쪽다리를 불구로 만들었다.


 부인 여조자(75세)씨와 3남2녀의 가정을 이룬 뒤에도 턱없이 모자란 보상과 성치 않은 몸으로 가족들에게 생활고를 끼쳐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운 자신의 희생으로 지금의 평화가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김민성기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0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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