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떡 노경애(수필가 ·대신초등학교) 냉동실 문을 열었다. 까만 비닐봉지에 쌓인 뭉치하나가 튀어나와 발등에 툭 떨어졌다. 얼얼하도록 아픈 발을 주물다 말고 들여다보니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떡이었다.
지난번에 앞집아이 돌잔치를 했다며 담 너머로 건네준 떡을 먹고 냉동실에다 넣어둔 것이다. 그때 문이 잘 닫히지 않아 겨우 밀어 넣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와 내 발등을 내리친 것이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다시 떡 봉지를 냉동실로 밀어 넣었다. 좌측으로 밀어 넣으면 우측에 있는 봉지가 밀려나오고, 우측으로 밀면 좌측으로 밀려나와 좀처럼 문이 닫히지 않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냉동실 정리를 할 요량으로 주방에 신문을 깔고 비닐봉지에 쌓인 음식을 죄다 끄집어냈다. 올망졸망 비닐에 쌓여있는 다양한 모양의 떡이 절반이 넘었다. 추석날 시가에서 가져온 송편, 친구가 준 인절미 등 여러 종류의 떡이 다른 음식물에 눌리어 속이 터진 채 일그러진 형태로 꽁꽁 얼어있었다.
아침에 남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도 없는데 봉지마다 무엇이 들어있어 복잡하냐며 오래된 것은 버리라고 한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아내의 영역을 침범 한다며 원망을 했다. 그러고는 냉장고가 적다는 핑계를 되며 문 두 짝 달린 냉장고를 사자고 얼굴을 붉혔는데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돌아선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버리려고 뒤적거려보아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과 함께 했을 때는 음식이 남는 법이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던 떡은 더 그랬다. 이젠 제 몫을 하기 위해 모두 떠나가고 남편과 단둘이 있으니 아무리 음식을 조금 만든다 해도 남기 일쑤였다. 그렇게 먹다 남은 음식들을 비닐봉지에 싸여져 냉장고로 들어갈 때마다 이다음에 다시 쪄서 먹을 거라고 다짐을 한다. 하시만 주말에 아이들이 내려오면 냉동실에 있는 떡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시장에 가서 또 다시 떡을 사온다.
이제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삶의 찌꺼기들을 버리듯 오래된 음식을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소중한 내 이웃의 인정을 버리는 것 같고, 환경오염이란 단어가 쓰레기통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철모르는 새댁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인생경험을 한 내가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는가. 이웃의 인정으로 똘똘 뭉쳐진 이 많은 떡을 어떻게 처분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떡과 찬거리를 분리를 하는데 시가에서 가지고 온 까만 비닐봉지에서 메주가루가 나왔다. 막장을 담그려고 가지고 왔었는데 냉동실 구석에 들어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아 잊고 있었다.
비닐봉지가 뚫려 있는 곳으로 흰떡이 녹아 떡가루와 함께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떡 가루를 보니 나의 뇌리를 번뜩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 맞다! 쌀가루나 찹쌀가루를 빻아서 찐 것이 떡이 아닌가. 불린 찹쌀가루나 보릿가루를 빻아서 고추장과 막장을 담는다는 고정관념이 떡도 같은 성분인 것을 잊고 있었다. 정리를 하던 손이 갑자기 빨라진다. 미지근한 물로 엿기름을 걸러 떡을 넣었다. 냉동실에서 꽁꽁 언 떡이 따뜻한 찜 솥 인줄 착각을 하는지 서서히 녹으며 잘도 풀어진다. 흐물흐물 풀어진 걸쭉하게 된 떡을 엿기름에 삭히니 묽어졌다. 오랫동안 달이고 식혀서 메주와 고춧가루를 넣고 막장을 담았다. 이웃의 인정이 담긴 떡이라서 일까 달콤하고 매콤한 막장이 완성되었다.
떡을 처분하고 나니 그렇게 좁던 냉동실이 넓어졌다. 훤해진 냉동실 공간처럼 일상에 쫓기어 분주하던 내 마음도 여유가 찾아온다. 머지않아 떡은 햇볕을 쪼이며 항아리 속에서 복작복작 발효가 될 것이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내 이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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