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찾아 나선 것이 노인 요양원 봉사였다. 이곳에는 나를 포함해서 여자가 세 명 있다.
젊은 봉사자와 간호사 나 세사람이 개인 사업체가 이끌어가는 낮 병동 노인 요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세사람이 하는 일은 각기 다르다. 젊은 봉사자는 오락 프로그램과 건강체조를 담당하고 간호사는 혈압, 당뇨, 수지침을 놓아주는 일을 하고 나는 할머니들의 거동을 도와주고 아침에 시는 길과 오후에 귀가길을 돌봐드린다.
우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낮 동안 한곳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수시로 토라지고 서로지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아닌 일를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지난 날의 이야기도 하고 지난 삶을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늘 불안해하고 자신의 편이 없다는 생각에 늘 외로워하며 눈치를 많이 보고 믿지 못해 하는 마음이 보인다. 마음을 편히 갖도록 우리들은 어르신들을 온 심혈을 기울여 보살펴주고 건강에도 힘을 쓴다.
젊은 봉사자는 정이 많고 재주도 많으며 눈물도 많고 예쁘다. 간호사는 차분한 성격이어서 항상 조용하고 실수가 없다. 우리들은 많은 일에 정성을 다해 어른들로부터 믿음을 갖게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어른이 미처 말을 못하고 입고 있던 옷에다 용변을 봤다.
나는 겁을 잔뜩 먹고 간호사의 눈치만 보는데 간호사는 양팔을 야무지게 걷어붙이더니 어르신의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로 엉덩이를 씻어주면서도 오히려 어른이 미안해 할까봐 “어르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미안해하시지 말아요.”하고 위로까지 한다.
간호사는 나에게도 어르신 아프지 않게 잘 붙잡으라며 하체를 말끔하게 씻겼다. 옷을 갈아 입혀야 하는데 갈아입힐 옷이 없다. 할머니가 감기라도 들까 봐 이불로 온 몸을 감싸 놓고 가족에게 연락을 해서 어머님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며느님이 서둘러 할머니 옷을 가져왔다.
미안하지 딸기 한 상자도 같이 들고 왔다. 나와 간호사는 어르신 옷을 갈아입히고 뒤처리를 깔끔히 해놓고 한숨 돌리고 같이 웃었다.
간호사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알아 눕자 그 수발을 든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일에도 책임과 정성을 다한다. 무엇이고 닥치는 대로 척척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힘든 일까지 얼굴 찡그리는 일 없이 훌륭히 해치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정말 이곳에서 일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잘 할 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칭찬을 하고 위로도 하며 어려울땐 같이 보듬어 주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간호사에게 나도 모르게 정말 수고했다며 칭찬을 해주자 옆에서 보고만 있던 봉사자가 나를 향해 대뜸.
“왜 내 앞에서 간호사를 칭찬하는 거요?”
하고 쥐어박듯 대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남을 칭찬하는데 화를 내는 사람을 평생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어떤 마음으로 내가 다가가야 할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어서 슬그머니 어른들 곁으로 와 앉아 있었다. 한숨 돌리고 TV채널을 돌려 연속극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데 봉사자의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찻잔을 받쳐 들고 옆에 와 서있다.
“우리 차 한잔 할까요?”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대답대신 한번 쳐다보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등받이 없는 의자에 둘이서 마주보며 찻잔을 잡고 앉아서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 같으면 칭찬을 해야 할 텐데 칭찬을 할 상황은 아니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봉사자는 평상시 간호사를 경쟁상대로 알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봉사자의 마음을 알고 있는 나는 늘 마음이 불안했었다. 칭찬하는 말에 꼬투리를 잡고 나서는 봉사자가 나는 싫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봉사자는 예쁘고 현명하며 유머가 있다. 깜찍하게 생겼다고 늘 생각하며 같은 여성으로서 부러워 한적도 많다, 여기 있는 할머니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받고 일을 한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서는 믿음이 보지지는 않는다. 공동체에서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욕심이 지나친 것이 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간호사에게 한 칭찬이 싫어 격분하고 눈물까지 쏟아내는 봉사자는 오히려 같이 칭찬을 했어야 할 사람이란 생각에 나도 한심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쏟아놓고야 말았다. 나는 봉사자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 화장실로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울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차마 상처주기는 싫어 말을 참다가 흘린 눈물이었다.
그 후 봉사자, 간호사와 나 세 사람의 사이는 말을 아끼고 눈치를 보며 각각 행동을 조심하는 등 전 같지 않아 아무리 부드럽게 지내려고 애쓰지만 보면 볼수록 불에 탄 냄비처럼 얼룩이 보였다.
불에 탄 냄비는 여러 번 닦아내야 전처럼 빛이 난다. 우리 세 사람 사이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며 갈고 닦은 후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가여 전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서로 칭찬도 하고 웃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노인을 돌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시작한 일이지만 하루 낮을 어른들과 생활하고 5시가 되어서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면 내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다. 집안일을 할 틈도 없지만 하기 싫어서 미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