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에는 우리 모두 저마다 좋아하는 시 한편쯤 읽으면서 지난 여름 외부로 발산해 버린 기운을 다시 내면으로 끌어들여 식어버린 가슴을 따뜻하고 조밀하게 채워 보면 어떨까.
< 송곳 같은 물음 >
지난번 국무총리, 장관 후보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필리글러 신부의 물음이 생각났다. “나는(죽어서) 마지막 날에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언뜻 보기엔 ‘기억’이란 단어 때문에 과거 지향적인 물음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너무나 현재진행형이며 곧 다가올 미래와 결부된 물음이다 . 누가 이 물음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필리글러 신부는 많은 학생들 앞에서 말하기를 “지금 여러분에겐 이 물음이 낯설겠지만 마흔 살이 지나 쉰 살 고개에 닿을 즈음엔 이 물음이 삶의 송곳처럼 다가올 것이다 ”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친다. 이럴 때 인간이 보이는 태도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즉시 시인하고 사과하고 책임진다. 또 어떤 사람은 구구한 변명을 하고 속이려 든다. 서로가 만나면 상처주고 상처 받는 날선 말들과 성난 얼굴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비계처럼 쌓인 자만과 오만을 사정없이 찌르는 송곳 같은 물음 “나는(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까?” 그래서 말인데 이 가을엔 시 한편 시집 한권. 멀리서 오는 발소리 하나쯤 꼭 챙기게 되면 모순과 불합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 삶의 목표는 언제나 올바르고 진실된 길을 걷는 것임을 일깨워 주리라.
해리포터의 ‘불의 잔’이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앞으로 우리 앞에 옳은 것과 쉬운 것이 놓일 것이며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잊고 살지만 개인이든 사회든 늘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쉬운 것 과 옳은 것으로 비추어 보면 기준은 명확해진다.
우리가 역설의 진리를 피해갈 수 없는 이유는 모순과 불합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 삶의 목표는 언제나 올바르고 진실된 길을 걷는 것임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성찰의 기회를>
이번 가을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 부터 물어 보자. 다시 말해 자신을 어떤 값어치로 키워 왔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여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 스물네 시간은 저마다의 재량대로 쓰되 날이 저물면 그날의 수확을 살피는 평가와 성찰의 저울대 위에 선다.
이때 각자 양심은 조심스럽게 그 눈금을 지켜볼 것이다. 이번 가을엔 시 한편 읽으면서 삶은 역시 좋은 것이고 결단코 절망할 이유가 없다고. 이 하나 긍정 앞에 천천히 머리를 끄덕여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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