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강아지는 우리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동물 중 하나이다. “할머니 강아지가 아닌데 강아지라 부르세요?” 네 살배기 손녀의 말이다.
“응~ 너무 귀여우면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그러면 강아지라 부르세요. 그런데 할머니 오빠는 내년이면 4학년인데 아직도 강아지에요?” “그래 할멈에게는 너희들 모두 손자니까 커서도 강아지지.”
내개는 ‘강아지’, ‘이쁜 강아지’, ‘착하고 귀여운 똥강아지’라 부르는 여섯 손자가 있다. 내 어릴 적 울도 담도 없던 시절 먹을 게 없으니 도둑은 많고 집집이 개 몇 마리씩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도둑 지키고 먹고 남은 찌꺼기 깔끔하게 먹어치우고 아가들 뒤 본 것까지 잽싸게 청소하고 때가 되면 새끼 쳐서 쌈지 두둑이 채워주고 아들·딸·손자의 친구가 되어주던 강아지. 수컷은 짝짓기 위해 한두 마리 제다 암컷이어야 한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암캉아지 자라서 배 불룩해져 강아지 낳아주길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달랑 두 마리를 낳았다.
여러 마리 낳을수록 앞뒷집, 양 옆집의 개는 많으면 열 마리 넘게 줄줄이 달고 다니는 것 부러워하시며 “좀 더 낳지”하고 아쉬워하시던 부모님. 그러나 우리 5남매는 신이 났다. 여럿 같지 않게 두 마리 강아지가 몽실몽실 통통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서로 “내꺼다” 싸움을 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자식마다, 손자마다 어금니 지긋이 깨무시면서 “강새이, 내 강새이” 하시는 것 정겹게 들렸다.
그 부름이 오늘 내 입에서 표준말로 바뀌어 “강아지”라 부르게 되고 손자들 덩달아 “할머니 강아지”라고 불러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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