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주를 보내며 사람마다 소회가 깊어진다. 망년회도 하고 성탄절도 맞고 세모는 그렇게 바쁘다. 당연히 하는 것처럼 관습적으로 보내는 행사인 것처럼 행해지는 송년행사들이다. 한 해 동안 잊을 일도 많고 먹어가는 나이도 잊고 싶은지 망년(忘年)회라는 이름으로 모임도 많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하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한다고 했다. 이제 섣달에는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한 해의 지난 일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어 12월은 마음이 뒤숭숭하고 바쁘다. 자연은 순리로 흐르건만 우리의 삶은 얼마만큼 순리를 따랐는가. 얼마만큼 한 해를 진실하게 살았는가. 남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지는 않았는가. 가족에게 소홀함은 없었는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 일 했는가. 잘한 일은 무엇이고 잘 못한 일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반성하고 새해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지는 때다.
한 해의 마무리는 잘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다 같이 맞게 된다.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의 분량을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차이가 나는지도 모른다. 송년 때에는 오히려 패자들에게 더 정이 가야 되는 것은 그들이 어쩌다 기회를 놓치고 낭패를 당할 뿐이지 결코 버림 받을 존재가 아닌, 우리 시대에 같이 공존하고 같이 숨 쉬다가 거야 할 동반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나누고, 이웃의 인심도 나누어 세상을 밝게 아름답게 가꿀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 오는 해는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탈무드의 교훈이 생각난다.
‘신이 사람에게 귀는 두 개로 만들고 입은 하나로 만든 이유’라고들 한다. 현명한 사람은 말을 적게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너무 많이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국정을 토론하는 국회도 거친 말,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홍수 같아서 세상이 온통 시끌시끌하다. 어디 국회뿐인가. 교육계도 도덕의 보루인 종교마저도 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민주사회이기 때문이라고들 하나 뚝 터진 물처럼 말이 쏟아지고 있다.
자기발견과 성장의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날개를 사용할 줄 모르는 새’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이 처음 새를 만들 때에는 새에의 날개가 없었다고 한다. 빨리 뛰지도 못하고 힘도 약해서 새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의논 결과 하나님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하나님은 새들의 요구가 당연하다고 여겨 새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날개를 얻은 새들이 좋아라 뛰어 나갔다. 그러나 날개는 전보다 무게만 더해서 오히려 느릴 뿐 아니라 전보다 더 위험했다. 새들은 하나님께 되돌아 와서 다시 호소했다. 날개는 오히려 짐만 될 뿐 아니라 쓸모가 없으니 다시 원상복귀가 차라리 낫다고 재차 호소했다. 이에 하나님이 탄식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에게 날개를 준 것은 걸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적이 나타나면 날개로 하늘 높이 날라고 준 것이라고 호령했다. 이에 새들이 그때서야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날개를 가지고도 날 수 없는 새 이야기는 누구나 자기 달란트가 있는데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 이야기이다. 체념을 성급히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된다. 나에게도 내 몸속에도 어딘가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음을 알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나의 달란트를 찾아보라는 이야기다.
한 해의 마지막 주에 겸손한 자세로 송구영신하면서 각자의 계획을 곰곰이 점검하고 삶의 목적과 의미도 한번쯤 재음미해 보는 기회이기를 기원해 본다. 2010년 섣달 마지막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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