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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강아지들이 있지만 야생화 압화(押花) 공예에 필요한 것은 버들강아지뿐이다. 지난해 재료준비를 한다는 것이 그만 때를 놓쳐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올해는 꼭 해야지’하면서 또 미루다 보니, 집 근처에 있는 버들강아지는 벌써 다 핀 뒤라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꽃샘추위는 온갖 심술로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지만 뒤늦게 꼬리를 흔드는 버들강아지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날 오후, 눈이 가물거리는 남편은 못 이긴 척 따라 나섰고 오랜만에 시내를 벗어났다. 조마다리 근처에 있는 개울로 목적지를 두고 일단은 가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물이 잘 오른 버들강아지가 여기저기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쪽은 해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건강한 강아지들만 모여 있네. 부실한 강아지 찾으러 개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일단 주차를 해 놓고 주변을 둘러보니 개울을 건너야만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물이 많지 않아서 건너가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징검다리 건너듯 물막이 위를 살짝 뛰면서 희망도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반대편은 해를 절반만 받아서 늦게 피는 버들강아지도 분명 있을 거야. 내가 찾는 게 있으면 다행인데 만약에 없으면 남편한테 미안함을 어떻게 대신하지. 집에서 실컷 잠이나 자라 할 걸 둑길을 걸어가는데 두 마음이 교차한다. 그러던 중, 땅을 밀어 내고 올라오는 풀들 사이로 냉이가 섞여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버들강아지 못 잡으면 대신 냉이라도 좋지 뭐. 내가 지금 캐지 않으면 냉이는 꽃다지한테 치여서 못 살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놔두고 빈손으로 가면 무슨 재미란 말인가. 냉이를 캐느라 버들강아지 생각은 잠시 잊었다. 둘이서 냉이를 캐다 보니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시골스러움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신나게 냉이를 들고 개울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큰 돌들이 철망에 갇혀 있어서 천천히 내려갔다. 물가 가까운 버들강아지는 한창 힘을 쓸 때고 내가 감당하기엔 무리인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저렇게 물 잘 오른 버들강아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 갈 수 없어 그 주변을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서열에서 밀려났는지 약해 보이지만 자기를 봐달라는 버들강아지가 꼬물거렸다. “으메~ 이쁜 거 너거들 어째 여기 다 모였냐잉~?” 전라도 말투가 순간 섞여 나오고 말았다. 이제부터 도둑질은 시작되고 인정사정 봐줄게 어디 있나. 가늘고도 줄기가 휘어버린 것만 골라서 내 가위질은 바빠졌다. 남편 딴엔 도와준다고 하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잘 모르고 큰 것만 잘라 댄다. “난 큰 것 필요 없는데…….” 약간 비꼬는 말투에 남편은 잠깐 하다 그만 포기하고 나의 행동을 보기만 했다. 그 넓은 곳에서 보는 사람은커녕 도둑질도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니 기회를 잡은 것이다. 금은방은 몇 분 만에 마음 졸여 잡히는 대로 확 쓸어 가는데 난 남는 게 시간이니 말이다. 회색, 약간 붉은색, 누런색. 내가 원하는 것들이 그곳에 다 있어서 로또 당첨된 것 같아 “대박이다” 압화에 쓸 재료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형태와 천연색 그대로가 좋기 때문이다. 신명이 난 나를 보고 남편은 “이왕이면 이것도 하지~ 언제 또 오겠어” 도둑질을 부추긴다.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친 김에 잘 다녀 왔다. 집에 오자마자 냉이무침을 만들어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니 욕심이라는 게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많은 것을 적당한 크기로 손질해서 압판에 층층이 누르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늘어난다. 짧은 봄, 집 밖으로 더 많이 나가서 봄을 싹 훔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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