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을 하면 교문 옆 게시판에 있는 ‘행복한 학교’라는 예쁜 손 글씨가 그 옛날 문지기 아저씨처럼 반가이 맞아줍니다. ‘행복’이라는 글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매력덩어리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학교에 도착하면 6학년 여학생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합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안겨오는 그들로 인해 또 행복해집니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좋으냐는 질문을 하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 좋으냐고 다시 물으면 잘 웃고 또 예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예쁘다’는 이 반가운 소리를 우리 학생들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낀다는 연애시절에도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오로지 좋은 성격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그것마저 아니라고 진심을 담아 말합니다. 그리고 신혼 초엔 대한민국의 여자들을 예쁜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뒤에서부터 찾는 게 훨씬 더 빠르다며 ‘못난이 부인’이라고 자주 놀렸습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못난이’였습니다. 부모님께선 늘 ‘우리 못난이’라 부르며 사랑을 주셨지요. 또 못난이 고모가 있었는데 동네 어른들은 저를 보면 그 고모를 꼭 닮았다고 하셨고 못난이 고모는 유독 저를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 시절 ‘나는 못난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는데 아무 의미도 모른 채 단지 ‘못난이’라는 친근감 때문에 즐겨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불혹을 넘기면서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못난이였던 제가 성형이라곤 단 한군데도 하지 않았는데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바로 ‘웃음’이라는 성형기술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니 웃을 일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의 순진한 말과 행동 특히 매일 웃어서 좋다는 아이들의 칭찬에 그들만 만나면 웃어 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화를 내야할 상황에도 아이들의 그 말이 떠올라 또 웃게 됩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해 왔으니 이젠 웃는 게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최근에는 웃는 얼굴이 주는 효과를 설명하며 아이들과 함께 웃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위해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를 강조하며 함께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처럼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얼굴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 요즈음은 그 말의 의미를 매일매일 새기고 있습니다.
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웃는 연습을 합니다. 웃음은 행복과 함께 못난이를 예쁜이로 만드는 최고의 성형기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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