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동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차로 두 시간을 달려가 영안실에 도착했다. 이웃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항상 너털웃음을 웃고 보는 사람마다 칭찬해 주시는 그런 분이셨기에 보고 배울 점이 참 많았다.
빈소에 들어서자 아들 셋에 딸 다섯이라 그런지 상복을 입은 사람이 30명이 넘는 것 같았다.
절을 올리고 아는 얼굴들끼리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맏며느리가 고맙다며 손을 덥석 잡는다.
그러더니 소곤소곤 귓속말로 한참을 얘기한다. “세상에 우리 아버님 말예요. 80세에 애인이 생기더니 13년 동안 얼마나 재미있게 사셨는지 몰라요 호호! 이번에 병원생활 6개월 하시면서 한 달에 전화비가 30만~40만원은 나왔다니까요.” “어머머! 웬 전화비요?”
“아니 그 수곡동 할머니와 통화하느라 하루 종일 전화기만 끌어안고 계셨다니까요. 무슨 반찬을 먹었냐.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는 둥… 크크”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93세까지 건강하셨고 20세 연하 73세의 할머니와 아름다운 황혼의 사랑을 하셨던 것이다.
더욱이 마지막 유언까지도 자식걱정을 안하고 “저 사람 좀 잘 돌봐주면 좋겠다… 잘 부탁한다”며 못내 아쉬움을 남기셨다고 한다. 물론 시어머니 돌아가신 지는 오래 됐지만 그렇게 유언까지 남기셨다는 얘길 듣고 우리끼리 소리도 못 내고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엊그제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는 영화를 보고 자식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배우 이순재 할아버지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우유배달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었는데 우연히 박스 줍는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가죽장갑을 선물로 받은 할아버지가 구름 위를 걷듯 들떠 있는 모습과 머리핀을 선물로 받은 할머니가 거울을 보며 좋아하는 모습 등 노년의 삶과 사랑을 애절하고 예쁘게 그려냈다.
그래 사랑이란 19살이나 93살이나 똑같은 감정이구나. 영화를 보며 황혼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애틋한 지 남편도 나도 참 많이 울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1%에 도달했으며 2020년이 되면 14%를 넘어설 것이라 한다. 점점 평균 수명이 높아지는 고령화 사회 속에 우리도 곧 노인이 되지 않겠는가.
어제는 앞집에 사는 62세 아주머니가 남편 돌아가신 지 3년 만에 재혼을 하겠다고 자식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펄펄 뛰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다 늘그막에 무슨 망측한 일이냐며 손자들이나 좀 잘 봐주고 곱게 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몇 푼 안 되는 재산 때문에 반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제 2의 인생은 60세부터 시작돼야 되지 않을까.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진정 부모님을 위해 선물해 줄 것은 무엇인가.
부모이기 이전에 한 남자고 한 여자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다. 백수 선생님은 돈 없는 것보다 추억 없는 것이 가난하다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저녁노을 같은 황혼의 사랑인 것 같다.
나도 죽는 그날까지 저 가경동 할아버지처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아니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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