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는 금융감독원 전현직 직원들의 비리로 인해 공직사회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진행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이들의 비리행태를 보면,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아니, 분노의 수준을 넘어 깊은 자괴감마저 든다.
흔히들 공직자를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한다. 공복이란 국가나 그 사회의 심부름꾼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공복은 국가와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관리들은 공복(公服·예복)을 갖추어 입었다. 관리들이 입는 옷을 공복이라고 한 것은 신라 법흥왕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관리들은 조정에 나아갈 때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곡령대수를 입었다. 곡령대수란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옷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손에는 홀(笏)을 들었다. 관리들은 왜 입기에 불편한 공복을 입었을까? 국가가 관리들에게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곡령대수를 입도록 한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옷깃을 둥글게 한 것은 국가의 사무를 볼 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뜻이다.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소매가 넓은 것은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으로 백성을 품고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을 보면, 공복(公服)을 입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해 있다. 이런 공직자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 나라살림을 맡겨두고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보다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은 공복(公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사업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공직자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사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관리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욕망보다는 국민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기 자식의 낡은 옷보다도 국민과 지역주민 자녀들의 옷 상태를 먼저 살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공직자란 국민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희생정신을 실천할 자신이 없는 공직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 직을 떠나야 한다. 조선 숙종시대 대학자이자 청백리인 윤증의 일화가 생각난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내려와 살던 윤증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윤증이 검소한 생활을 한 것은 집안형편이 곤궁하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성품이 청렴하기 때문이었다. 윤증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전해들은 임금은 그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했다. 그러자 윤증은 임금의 하사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직접 나랏일을 보지 않는 상황에서 나라의 재물을 축낼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윤증의 부인은 윤증의 낡은 도포를 새로 장만해 주기 위해 곡식은 반납을 하더라도 비단만은 한 필만 받자고 했다. 그러나 윤증은 이 또한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늘날 우리의 공직자들도 윤증의 일화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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