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출근길, 시내버스에서 소매치기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자신의 행위가 발각되자 흉기로 운전사와 승객들을 위협하면서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버스 안은 갑자기 두려움과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용감한 한 청년과 시민이 합세하여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소매치기가 휘두르는 칼을 제압하고 소매치기를 잡았다. 모든 승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한 몸에 받으면서 일순간에 영웅이 되었다.
옛 말에 호걸(豪傑)은 되기 쉬워도 영웅(英雄)은 되기 어렵다고 했다. 백 명을 당해내는 사람을 호(豪)라 하였고 열 명을 당해 내는 사람을 걸(傑 )이라 했으며 지력(知力)에 있어 만 명을 당해 내야 영(英 )이라 했다. 삼국지에 보면 대장부도 많고 호걸도 많지만 영웅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웅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시내버스 안에서 기껏 소매치기 한 명을 잡은 청년을 왜 영웅시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각박한 현대 사회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 대접받기를 꺼려하는 것이 통례다. 영웅이 되기 싫어서가 아니라 큰 위험부담을 자처하지 않으려 한다.
그 청년은 자기 호주머니를 틀린 것도 아니고 특히 소매치기와 자기는 자기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이다. 그냥 모르는 체 하고 있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칫 어설프게 대들다가 소매치기가 휘두르는 칼에 중상이나 치명상을 입어도 어디 하소연 하거나 보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오직 젊은이의 의무를 다 하는 용기를 발휘했기에 많은 국민들은 그를 현대판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가 “소매치기”라고 외치면 대부분의 승객들은 자기 호주머니나 핸드백을 만져 볼 것이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여유를 보일 것이다. 공연히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어 사서 고생하는 일에 말려들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청년은 결과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의협심보다는 그저 한 보통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한 마디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우리 격언 중에 “일을 행하기 전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초미가 급한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격언은 통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섹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즈’에 보면 “용감한 사람은 단 한 번 죽음에 직면하지만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음에 직면케 된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우리는 요령과 약삭빠름만이 통할 수 있는 현실에서도 가끔씩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자구행위(自救行爲)를 몸소 실천하는 용감한 청년 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통해서 가슴이 찡한 감동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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