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는 뛰는 게 나을까, 걷는 게 나을까. 어느 쪽이 덜 젖느냐는 호기심이 왕성한 초등생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궁금증이다. 옛 조상들은 뭐라고 했을까.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다.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 갔을 적에 갑자기 비가 내렸다. 임금을 비롯해 호종하던 신하들은 비를 피하느라고 황급히 뛰어갔다. 그런데 백사(白沙) 이항복만은 오는 비를 흠뻑 맞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옆에서 까닭을 묻자 이항복이 말했다. “뛰어가면 앞에서 내리는 비까지 죄다 맞습니다. 천천히 걸어야 비를 덜 맞지요.” 기발한 대답에 임금과 신하들은 오랜만에 배를 잡고 웃었다고 한다........................(중략)..................... 장맛비가 간단없이 전국을 두드리고 있다. “말 안 듣던/ 지상의 청개구리들/ 갹갹갹갹/ 잘못했노라고 일제히 울어대더니/ 괜찮다, 괜찮다/ 와락 품어 안으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들 모두 눈물 흘리신다.” 양전형 시인의 ‘장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눈물이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 장맛비야 우산으로 긋는다지만 가슴속의 저 비는 어떻게 그을 것인가. 가도 가도 끝없는 인생의 빗줄기는 또 무엇으로 긋는단 말인가. (2011, 7, 2. 경향신문 [여적]>
음악회를 한 토막 가운데서 끊어지게 한 빗줄기 속에서 이 비는 무슨 말을 내게 하고 싶어, 이 빗줄기는 무엇을 그만두어라 하는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몇 달씩이나 거듭하여 논의하고, 연습하라고 하고, 돈도 달라고 했지만, 결과는 중간에 준비한 것을 끊어버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이라 하지만 그저 확률에 의거한 예보만을 믿고 장마철에 이리 무모하게 일을 벌려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찾아오신 박보생 시장님, 이철우 국회의원님, 멀리 상주 등 다른 지역에서부터 오셔서 힘을 주시던 분들, 무엇보다 예쁜 치장과 장비, 열심히 한 연습 등으로 출연진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사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업무시간을 쪼개고 저녁의 피곤함을 잊은 채 두 달이 넘게 준비하신 김천시청의 자랑 보컬 그룹 脈 s, 장애를 통해서 걷기조차 힘든 몸으로 수화공연을 준비하고 뙤약볕아래서 두 손을 입으로 연습하신 자원봉사센터와 장애인 사랑 교회 수화 봉사팀, 예쁘게 꾸미고 열심히 노력하여 평생 한두 번 있을까 한 귀한 시간을 막무가내로 빼앗긴 한걸음 어린이집의 천사들, 시험에 겹치고 학원에서, 학교 공부에서 눈치를 보면서도 매주 토요일 이 시간을 위해 노력해 온 중학생 YMCA회원들, 그 동안의 정성에 어떤 것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가져왔던 준비와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잘못을 빌 수 있을까요?
오늘 저희들은 하나세상의 대표로써 더욱 겸손하고 이 지역사회와 이 지역에 있는 장애, 비장애인에게 해야 할 일을 다시 생각하라고 가르쳐주신 하늘의 뜻이 생각합니다. 책임을 지고 있으니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서는 꾸중과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요.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은 사양합니다.(소위 이 지역사회의 대표라는 초청장을 받은 사람,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시민의 아픔을 애써 외면하려는 자들).
따라서 가장 빠른 시간 내(예를 들어 7월 하순의 토요일 경)에 김천의 실내장소를 이용하여(예를 들어 김천문화원 등) 예정했던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하고자 계획합니다. 책임 있게 처리하는 방법의 하나가 몇 달을 준비해온 천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하나세상’을 만드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구요.
용서해 주시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내어 만들고자하는 6-2회 작은음악회를 지켜주십시오. ‘하나세상’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또 최선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6회 작은 음악회에서의 중단사태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참가자, 단체, 김천의 장애우 형제, 김천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이번 달 내에 꼭 다시 이런 무대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약속합니다.
2011년 7월 2일 김영민, 조순남, 채은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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