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많았던 팔월도 어느덧 하순이 접어들어 아침저녁 선선하다. 추석이 가까워지며 마음은 급하고 매일 집안청소에 빨래하고 환기를 시켜도 집안은 눅눅하고 몸은 축 처져 도무지 힘이 나질 않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 동네 사람들이 앞집 마루에 모여 텃밭에서 장만한 부추 호박 고추 깻잎을 따서 감자전 부칠 준비를 해놓고 나를 불렀다. 해가 나면 얼굴 보기도 힘든 이웃사람들이 모여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침을 먹지 않아 그런지 노릇노릇 구운 부침개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있었다.
잦은 비로 옆집은 포도 따느라 힘들었다고 하고 앞집은 고추가 탄저병이 들어 가위로 오리며 올해 고추 값이 비싸다는데 아들 딸 줄 고추도 못 건졌다고 한숨을 쉰다.
잠시 부침개와 막걸리 한잔에 이야기꽃이 피었다. 해 뜨면 김장밭 장만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헛일이야 요양원에나 갑시다” 일이 없어 공장에 안간 사람이 제안을 해서 계획에도 없던 요양원에 가기로 했다.
십시일반 추렴을 해서 소화에도 좋고 치매에도 좋다는 노란 바나나를 한 상자 사서 우리 마을 할머니 세 분이 있는 어모 능치리 이레요양원에 갔다. 아니 동네 사람들이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갔다. 사과가 빨갛게 익었을 때 갔었는데 “또 올게요” 하고 온 게 벌써 1년이 되었다. 많이 기다렸을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거짓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모를 지나 구 길 상주방면으로 가다 능치리 마을로 가는데 잦은 비에도 들판에 벼가 고개를 숙였고 색이 빨갛게 나는 사과를 보니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안개가 우리를 안내하듯 이레요양원까지 같이 가서 산으로 올라가고 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요양원 거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왠지 쓸쓸하고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할머니들이 우리를 잘 못 알아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조금 있자 낯이 익은지 우리를 보고 자꾸 울었다. 자녀분들이 지주 오냐는 물음에도 자꾸 울자 요양보호사 말이 보면 자꾸 울어서 자녀분들도 발걸음이 뜸하다고 했다. 요양원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 엄마도 요양원에라도 살아 계시면 자주 찾아 뵐 수 있을 텐데 하는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두 아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온다는 말도 없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 챙겨주느라 다리가 아팠다. 아들이 다녀가고 올 때는 몰랐는데 떠날 때 마음이 아팠다.
우리엄마도 내가 다녀가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살아 계실 때는 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추석을 앞두고 요양원에 계시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녀들이 자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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