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바람인가 했더니 가을빛이었다. 울컥울컥 설움인가 했더니 파아란 기억이었다.
긴 가을의 그림자가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직 가을 햇살의 흔적을 남긴 채 은행나무 허리까지 내려온 바람이 시린 무릎을 어루만지고 꼭 다문 입술에서 뜨거운 네 시간을 찾고 있을 때 가을은 두려움에 떨며 독이 오른 꽃뱀을 안고 간다.
겨우내 몸 누일 동굴을 찾으며 그녀가 걸어가면 가을빛 여리게 대지를 적시고 돌 구덩이 아래 한 조각 햇살만 남은 가을이었다. 가난하고 숨 막히는 가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