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승혜판사,서경희지원장, 유경은판사. | |
조선 컴 사회면 30일자에 의하면 지난달 첫 재판을 받으려고 법정에 나온 한 30대 남성은 판사들을 힐끗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재판장과 좌·우 배석 판사 3명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그는 당황한 듯 법대에 앉아 있는 세 판사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다 피고인 자리에 앉았다. 재판을 받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성 판사들이라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고 걱정했던 모양이에요. 들어오면서 '흠칫' 하고 놀라는 남성 피고인들이 많아요."세 판사는 '판사는 대부분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건 관계자들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자신들을 보고 신기해하거나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피고인들은 좀 싫겠죠. 뭐라 말도 못하고 말이죠." 박승혜(30) 판사의 말에 판사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28일 오후 경북 김천시 삼락동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 성범죄전담 재판부 서경희 지원장(가운데)과 류경은(왼쪽), 박승혜(오른쪽) 판사가 법대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전국 법원에서 유일하게 여성 판사로만 구성된 합의부다. 세 판사는 대구지법 김천지원 합의부 서경희(49) 지원장과 류경은(31)·박승혜 판사다. 올해 초 서울에서 근무하던 류 판사와 박 판사가 김천지원으로 발령받으면서 전국 유일의 여성 재판부가 탄생했다."정말요? 저희밖에 없는 줄은 몰랐어요."28일 오전 김천지원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들이 전국 법원에서 유일하게 여성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동그래졌다. 서 지원장은 "우리 법원 판사 9명 중에 6명이 여판사이기도 하고, 연차(年次)대로 배치하다 보니 이렇게 구성이 됐다"며 "지금 부장판사 중 여판사가 적기 때문에 최근까지는 여성 재판부가 생길 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 법관 2610명 중 여판사는 670명(25.7%)이다. 세 판사로 이뤄진 재판부의 공식 명칭은 김천지원 '성범죄 전담 재판부'다. 공업지역인 김천·구미 일대에는 홀로 사는 20~40대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성범죄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김천지원에는 합의부가 한 개뿐이라 형사·민사 합의부 사건도 함께 다룬다."피해자들이 증언하면서 당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여성 판사에게 말하는 게 남성 판사에게 말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편한 건 사실이니까요 서 지원장은 여성 재판부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판결은 양형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하지만, 여성끼리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피해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법정에 증언하러 나왔던 한 성폭행 피해 여성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여판사들이라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천지역의 김모(51) 변호사는 "처음에 재판부를 봤을 때에는 의뢰인도 나도 깜짝 놀랐지만 익숙해지니 좋은 점이 많다"며 "남성 셋으로 구성된 재판부보다 재판을 세심하게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여성 재판부로서 고민도 있다. 남성 피고인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 지원장은 "혹시 남성 피고인의 성장 환경이나 행동 양식 등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못할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며 "여성만 있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내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수다 떨듯'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전담 재판부로서 법원이 개선해야 할 점을 묻자 세 판사는 "피해자들이 여성 법관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좀 더 개선돼야 한다는 증거"라며 "궁극적으로 법관의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법원이 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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