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천하장사 씨름대축제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스페인, 몽골, 미국 등 세계 8개국 4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전 경기 무료입장, 커피·차 무료제공, 아울러 매일 매일 쏟아지는 푸짐한 경품행사, 초청 유명가수의 노래, TV중계 등 그야말로 축제 한마당이었다. 씨름의 본고장 우리 김천에서 이렇게 좋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 준 김천시와 체육회 관계기관 많은 분들의 노고가 함께 한 축제 행사였음을 실감케 했다.
우리 김천시가 이렇게 발전하고 성숙했음을 국내외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우리 시민 모두가 뿌듯한 자부심으로 남게 한 축제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관중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씨름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살펴보면 ‘세종실록(世宗實錄)’ 제50권에 “세종12년(1430년) 윤 12월 형조에게 아뢰기를 중상총이 양복산과 서로 씨름을 하다가 양복산이 죽었으니 율(律)에 따라 교형(絞刑)에 처할 것이나 한 등급을 감하고 장례비를 물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세종 13년(1431년) 3월에 왕이 경회루(慶會樓)에 거동해 종친의 활 쏘는 재주를 구경하고 역사 안사의 등으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한 뒤 차등해 상을 주었다.
또한 김정희 저 ‘완당집(阮堂集)’ 제10권에 의하면 단오절 씨름놀이 때는 마을의 노소 모두가 승부를 다퉜으며 사람마다 녹음 속에 모여서 기쁨을 같이 했다.
단오 씨름에 온 마을 씨름꾼이 모여/ 임금 앞에서도 또한 재간 부리네/ 이기거나 지거나 모두 다 기꺼워 하니/ 푸른 버들 그늘 속에서 웃어대는도다.
19세기 초 순조 때 홍석모 저 ‘동국세시기’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뒤터에 모여서 씨름놀이로써 승부를 걸었다고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홍도의 ‘씨름그림’은 들배지기 수로써 상대방을 들어 메치려는 장쾌한 기세를 생동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구경하는 많은 군중들은 갓을 쓰지 않고 상투바람으로 씨름판을 집중하면서 모두 유쾌하고 명랑한 모습들이다. 이것으로 보아 씨름은 군중들이 즐기는 낙천적인 대중적 경기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경기, 씨름이 오랜만에 김천에서 열려 이슬기 선수가 천하장사에 등극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뜻 깊은 일은 우리 김천 출신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선수가 천하장사 결정전에 앞서 공식 은퇴식을 갖고 정든 모래판을 떠난 일이었다.
고향인 김천의 팬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선수 시절 착용했던 유니폼과 홍색 청색 샅바를 대한씨름협회에 헌정하고 협회로부터 공로패를 받음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일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태현은 25년 동안 씨름 선수로 활약하면서 백두장사 20차례, 천하장사 3차례 올랐다.
그는 “선수로서 마지막을 알리는 은퇴식을 고향인 김천에서 하게 돼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김천시가 씨름을 발전시키는 데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모래 위에서 더 이상 씨름을 보여 드릴 수 없겠지만 몸과 마음은 항상 씨름장에 있을 것”이라고 선수생활을 끝내는 소감을 밝힌 이태현의 붉은 눈시울에서 김천 사랑의 정이 배어 있음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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