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에 처음 가 본 소백산은 나를 다시 가게끔 흔들어 놓았다. 등산화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눈을 끝없이 밟아 보았다. 그 해에 소백산을 세 번씩이나 다녀왔으니 푹 빠질 만도 하다. 다시 한 번 삼총사랑 올해 2월 27일에 소백산을 가기로 했다. 삼총사는 물론 남편이고 잘 아는 형님이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친구도 등산을 좋아하고 나랑은 코드가 잘 맞아서 편한 사이다. 시어른을 모시며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 점심 약속을 해도 얼른 먹고 가기에 바쁜 친구이다. 그런 친구에게 기회를 같이 만들고 싶었다. 2월 초순에 눈이 많이 내렸다. 눈 쌓인 황악산을 멀리서 보기만 했지 저 산을 언제 가보나 했다. 친구는 세 번이나 다녀왔다는데 나는 가까운 산을 두고 먼 산을 쫓아다녔다.
2월 18일 친구도 일이 없고 시간이 된다 하여 등산로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겨울 속에 봄이 온 것 같았다. 눈이 약간 얼어 있었고 양지쪽 등산로는 땅이 질퍽거리기도 했다. 등산을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우린 서로 속 얘기를 슬슬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해서 자기 딸이 이달에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늦게 결혼하는데 뭐가 급해서 빨리 가냐고 물었다. 남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친구는 벌써 할머니가 된다고 했다. 앗, 이럴 수가 잠시 멍했다. 나한테 속사정을 털어 놨지만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눈치를 보다 화제를 얼른 돌렸다.
올라갈수록 눈이 얼어붙은 곳이 많아 미끄러웠다. 그러나 스틱과 아이젠을 한 덕분에 별 무리 없이 2시간 만에 황악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1111m 우리 집 호수도 1111호 숫자가 똑 같았다. 친구랑 사진도 찍고 보는 즐거움에 산에 오르고 산마다 느끼는 맛이 달라 더 오르게 되는가 보다.
내려오는 길, 친구는 앞에서 잘도 내려가고 난 그만 경사가 심한 길에서 아차 순간 쿵 넘어지고 말았다. 몇 발짝 떼고 내려오다 이럴 수가! 또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스틱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참고 내려 와서 샤워를 하고 발목 주위에 맨소래담을 발라 댔다. 아침에 일어나니 더 부어올랐고 바로 침을 맞았더라면 고생 덜 할 것을 고집만 부렸다. 붓기가 빠지지 않아 목요일 오후 집 근처 한의원에 가니 그 날은 휴진이란다. 다른 한의원에 가니 12시까지 진료란다. 상태가 악화되어 갔더니 앗, 이럴 수가! 쩔뚝쩔뚝….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악산 눈길에 발목이 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빠른 걸음 때문에 오른쪽 발목을 잘 삐었다. 그때는 통증도 없고 괜찮아서 그냥 지냈다. 그동안 인대가 늘어난 것도 모르고 이 체중을 지탱하느라 한계에 부딪혔나 보다. A/S도 때에 따라서는 받고 살아야지 힘든 산행도 아니었는데 무관심의 결과인가. 가끔 발목에 신호가 왔음을 모르고 이젠 발을 사랑해야겠다.
아, 소백산 꿈은 사라진 건가. 날짜는 다가오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 26일 대책 없이 따라 나섰다. 선비촌에서 묵고 다음 날 초암사에서 남편과 형님, 형님의 영주 친구 분은 나를 빼놓고 산행을 했다. 밑에서 기다리는 동안 젊은 일가족의 49재 목탁소리가 심심하지 않게 했다. 개울에서 이른 봄을 찾는데 어찌해서 발과 종아리 사이에 중심을 못 잡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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