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적인 정당정치현실이 선거 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현행 지방의원의 공천제도가 총선과 대선 때 써먹을 ‘짝퉁십만양병설’인가. 중앙정치의 폐해로 지방의원들의 공천은 곧 족쇄를 차는 것이다. 배지를 달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생존법칙을 전제로 보은이라는 미덕을 발휘하는 대의명분이 성립되는 것이다. 요즘 출·퇴근길 지지를 호소하는 지방의원들의 모습이 과연 어느 잣대에서 옳고 그른지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임기 동안 공천권자눈치보기로 지방입법기관의 스타일 구겨진 비애가 묻어난다. 지방의원의 공천제도야 말로 공당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지 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공천으로 탄생한 정치인은 당 사람이지 시민의 사람으로 살기엔 힘이 부치기 마련이다. 언제든 쓰고 지울 수 있는 살생부를 가진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본능이 존재하는 게 우리정치의 현실이다. 위로부터의 도덕적 해이는 정치파생·인접분야에도 나타난다. 대기업이 프렌차이즈 방식으로 슈퍼, 빵집, 커피장사나 하며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정치권과 흡사하다. 또 민간인사찰은 웬 말인가. 골리앗이 다윗을 상대로 싸우는 비겁함과 다를 바 없으며 이겨봐야 욕먹을 일이다.
그동안 전국기초의원들은 정당공천폐지를 비롯한 불합리한 제도개선을 정부와 정치권에 건의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 지방의원 1500여명이 모여서 개선을 촉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방자치시대에 아이러니하게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날 김천시의원들도 머리띠를 두르고 현수막을 치켜세웠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보완과 수정을 거듭한다. 그러나 의도가 보이는 불완전은 담합의 결과로 빚어진 범죄 집단의 행태로 밖에 볼 수 없다. 완벽에 근접하려면 점진적 수용이 필요한지 개혁해야 함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겪은 시대는 좌우, 보수진보의 이념논쟁에서 정체성 혼란을 당했지만, 이제 이념을 초월하는 유연성이야말로 내가 아닌 우리의 대변자 된 사람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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