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다치셨다면서요. 좀 어떠셔요?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우예 알았노. 너거 놀랄까봐 말 안했지. 말 한다고 어디 빨리 낫더나. 걱정만 하지. 괜찮데이.” 두릅을 캐러 산에 가셨던 시어머님께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치셨는데 계속 움직이셨나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더 심해져 병원에 가셨는데 뼈에 실금이 생겨 결국 깁스를 하셨다고 합니다.
딸이 셋이나 되고 아들도 하나 있고 게다가 간호사 출신 며느리도 있는데 걱정할까봐 연락을 안 하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시댁 행사가 있어 큰시누와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안부전화를 드릴 때마다 별 일 없냐는 제 말에 아무 일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깁스를 해서 거동이 불편하신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습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않고 전화만 하니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20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말이 없는지 무뚝뚝하기 대회에 나가면 분명 1등하고도 남을 마산 남자였습니다. 저도 경상도 여자이니 그 말없음이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콩깍지가 씌었었나봅니다. 진국 같다는 친정 부모님의 말씀에 결혼 결심을 했습니다. 첫인사를 갔던 날 싱그러운 바다내음을 한가득 안으신 분이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 며느리의 인연을 맺어 한식구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당신 배 아파 낳은 딸자식보다 외며느리인 저를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챙겨주며 무조건 주기만 하셨습니다. 무뚝뚝한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시어머님 가슴에 못 박는 일이 될까 두려워 그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아서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온 날들입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그렇게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만 하셔도 이제껏 단 한 번도 아프신 적 없던 분이셨는데 그만 발목을 다치고 말았습니다. 혼자 생활하시기에 식사 준비며 화장실 가는 것이며 병원 다니기도 힘드셨을 텐데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 마음 쓰이게 한다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식 듣고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하는데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니 “괜찮다”는 말씀에 주말을 기다리고 맙니다. 깁스를 한 채 모든 걸 혼자 해결하셨을 당신을 생각하며 며느리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전화 드리는 횟수도 자꾸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한답시고 편한 것만 찾고 있습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싸가지 없는 며느리가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려옵니다.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이렇게 끝이 없는데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순간순간 멈춰 버리려고 합니다.
주말엔 당신 좋아하시는 팥도너츠랑 생강과자 사서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친 거 이야기 안 해주셔서 싸가지 없는 며느리 되어 많이 삐쳤다고 제 마음 꼭 알리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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