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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시간은 머물러 주지 않는다

박현옥(요양보호사·김천실비요양원)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6월 21일
우리는 밥상 앞에서 어르신들의 배변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맛있는 식사를 한다.
나이가 들면 어르신들 돌보는 일을 하며 살겠다던 말을 자주 하던 내가 나이 든 줄도 모르고 살다가 요양 보호사가 되어 나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어르신들 수발을 들어드리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한 가족인가 생각 될 정도로 지내지만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은 남자 어르신들은 부부 싸움을 하는 것처럼 싸울 때도 있다. 그러다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부부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하며 피식 웃는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역정을 자주 내는 날은 “어무이 오늘 왜 화가 나셨어요?” 소곤소곤 속삭여드리면 내가 진짜 며느리인양 착각을 하신다.

“그래 네 왔나? 암 것도 아이다. 아무소리 마라.”
오히려 며느리 마음 상할까 쉬 쉬 하는 어무이도 계신다.
“엄마 오늘은 밥 많이 드셨어요?”
“그래, 마이 묻다. 네도 밥 무라.”
구순이 넘은 엄마 어르신께서는 내가 딸인 줄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야야, 내가 네 줄라고 따로 돈을 좀 모아났는데 네 오라비가 어렵다 해서 좀 줬다. 네 섭섭해 하지 마라이.”
“예 엄마 잘 하셨어요. 전 괜찮아요.”

소를 보러 간다고 밤이 깊었는데 자꾸만 나오는 어르신께는 “내가 소 끌어다 놓고 소죽 주고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안심을 시켜드리지만 믿지 않으신다.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사시는 분들이다.
어느 어르신께 가족이 면회를 왔다. “엄마”, “할머니”를 불러도 어르신께서는 멍히 바라만 보신다. “어르신 막내아들 왔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나서 보지만 오히려 하얀 머리 팔순 어르신께서 어린아이의 겁먹은 눈빛으로 나에게 도움을 청하신다.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가 어느 순간 “오, 네가 누구냐” 라고 손자 이름을 한번 불러주기라도 하면 가족들은 반가워서 “어, 엄마! 이제 아시겠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결국 속 시원한 대화 한번 못하고 젖은 눈시울을 감추며 가족들은 떠난다. 어르신은 서운하심도 없다.

가족들을 배웅하며 다 큰 손자들의 등을 토닥이며 “부모님 건강하실 때 잘 해드려야겠지요. 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날이 금방 와요.” 말이 필요 없는 교육이 될 것 같다. 워낙에 변화무쌍하고 자기중심적인 문화 속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이것도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의 세계에 갇혀 앞뒤 사정 모르시고 자기만 봐달라고 하시니 힘들고 짜증스러울 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네가 저 자리에 누워 있을래 아니면 수발을 들어드릴래 어느 자리가 좋겠냐?”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두 번도 생각지 않고 내가 모시겠다고 강하게 말한다.

어느 날 내게도 하얀 머리에, 떠나야 할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오늘이 감사가 되고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이 즐겁다. 가끔 실습생들이나 신규직원에게 안내를 할 때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모시면 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한 때는 사랑하던 부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언제 당신을 알았는가?’ 라는 눈빛으로 바라만 본다.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기약 없는 뒷바라지에 지쳐 이제 그만 떠나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가족들, 이러한 인생의 결국을 보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죽음 후의 다른 생을 믿고 있는 나로서는 한 생의 시간들을 잘 견디어 내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분들이라 생각하며 나 또한 자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더 많이 섬기며 사랑하며 살고 싶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구순 어머니께서 “빨래터에 가야 한다”시며 “쌀이 비싸니 보리쌀을 많이 넣고 밥을 하라”고 하신다. 쌀이 귀한 시절을 살아오신 것이다.
한밤중 고요한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다른 직원의 소리에 나도 온 몸에 맥이 풀림을 느끼며 허겁지겁 올라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것을 순회하다 발견한 직원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자주 있는 일임에도 늘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배웅 할 시간을 주는데 오늘은 너무도 갑자기 당한 것이다. 비상 연락을 취하고 가족들이 오고 또 한분의 어르신이 떠나셨다. 가족들의 통곡소리에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함께 울었다.
소리 없이 살며시 웃으시던 어르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허공에다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 먼저 가셔요. 이제 편안 하시지요? 나중에 뵈요.”
여전히 소리 없이 웃으신다.

머물러 주지 않는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멀지 않은 훗날의 나를 생각하며 오늘도 뛰고 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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