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업무상 해외방문이 많았지만 중국과는 지난 십여 년 동안 한 차례도 인연이 닿질 않았다. 10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는 둥 워낙 땅이 넓어 아직도 모택동 공산당 시대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둥 상상만으로는 가져지지 않는 갈증이 극에 다 달았을 무렵 운 좋게 대학 교류사업단 일행으로 발탁되어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일도 일이지만 내심 짬이 나는 대로 만가지 형형색색의 중국차를 맘껏 마셔볼 야심에 들떠 있었다. 원래 차에 관심이 많아서였는지 우리 차며 일본차, 중국차 그리고 서양산 홍차까지 두루 섭렵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차의 본 고장은 중국이 아니겠는가.
발효차, 반발효차, 비발효차로 나누는 우리의 차 분류와는 달리 청차, 황차, 백차, 흑차, 녹차, 홍차 등의 세심한 구분이며 용정차니 오룡차니 철관음이니 하여 차의 브랜드화를 오래전부터 확립해 오고 있는 나라. 2003년 자료지만 전 세계의 74.5%에 해당하는 57만 톤으로 녹차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 2002년 자료지만 연간 1인당 차 소비량이 0.36kg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자그마치 9배나 많은 나라. 오늘날 차(茶) 대국 중국 차시장의 현주소이다.
공항에서부터 차 세레모니는 시작되었다. 출입국 직원들이 마스크를 낀 채 나름 반갑게 입국을 맞아주는데 그 옆에 차통이 놓여져 있었다. 목이 말라 매점에서 녹차를 한 병 집어 드니 대다수 사람들의 손에 잡힌 갖은 모양의 차병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 오르니 기사도 차통을 끼고 앉아 있고 거리를 달리다 신호등에 잠시 대기하자니 길을 가다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도 한 모금 녹차를 마신다. 세상이 온통 차(車)와 차(茶)다. 거리에는 달리는 차(車)로 북적거리고 사람들은 마시는 차(茶)로 연신 목을 축여가며 떠들어대니 말이다. 느끼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한잔의 따끈한 차가 있어 식사 때마다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평생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은 그들이지만 서양인에 비해 성인병 발병 확률이 여전히 낮다고도 한다. 차는 거대 중국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요소인 동시에 민간약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시내의 차 판매점에 들렀다. 예상대로 각지의 명차들이 화려한 용기에 고이 싸여 자신을 알아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식으로 까짓 몇 만원 정도가 아니었다. 제법 우리나라에 까지 알려진 유명차를 가리키면 십만 단위 심지어 백만 단위를 호가하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차들도 즐비했다. 중국산 다른 제품들에 비해 디자인도 세련돼 더군다나 취급하기 좋게 소포장 단위로 꾸려져 있어 장기간 보관하기에도 선물하기에도 편리한 아이디어 제품들도 눈에 띄었다. 아무렴, 자주 가까이 하다 보니 더욱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마케팅 전략들이 쏟아져 나옴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차 하나만 두고 보면 중국이 가히 세계적 수준인데,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 다가올 미래에 중국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을 하니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졌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 마음과는 달리 소량의 차만을 구입하여 비행기에 올랐다. 차(茶)만 바라보고 같던 여정에서 차(茶)를 통해 무섭게 전진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새로이 돌아보게 되었다. 걱정하고 놀랄 일이 아니라 아직 우리가 우의를 점하고 있는 분야들이 많기에 저들의 가파른 성장을 자극삼아 다시 한 번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후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을 따라잡기 위해 허리끈을 졸라맸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역할이 있었다면 이제 소위 G2라 불리며 세계 최대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젊은 세대들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흥청망청 마시고 쓰는 여행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돌아온 아주 유익했던 중국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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