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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이름 부르기

윤애라(시인·부곡동 우방A)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7월 12일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요? 맞은편 아파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 입양 보낸 새끼를 부르는 것일까요? 새빨간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린 그 자리를 맴맴 돌면서 밤 새 허공을 긁어대며 이름을 부르는 저 소리. 주인도 그 마음을 짚어보는지 저 소리를 그냥 둡니다.
저렇게 내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말 문 닫고 벌써 넉 달 째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엄마가 내 이름 한 번만 불러 주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눈으로만 말씀하시는 걸 듣고 돌아옵니다. 그 눈 속에 온갖 말씀들이 다 적혀 있는 걸 어설프게 읽고 돌아옵니다.
“엄마가 오늘은 이상해. 말씀을 안 하시네.”
여든 네 번째 생신날, 하필이면 그 날 어머니의 말문은 닫혔지요. 자꾸 묻기도 하고 같이 노래를 불러도 보았지만 어머니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불안한 예감을 안고 병원으로 모시고 보니 이게 웬 일이예요? 뇌경색이 일 년 만에 재발된 것입니다.

그래도 지난해처럼 약을 드시고 운동을 하면 차츰 나아질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천국 가신지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어머니까지 쓰러지시다니. 아픔과 원망이 해일처럼 밀려왔어요, 엄마! 철없는 맏이 노릇 50년을 해왔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어요. 맏이인 제게 이름을 불러주는 분은 오직 부모님인데 모두들 언니, 언니, 하고 부르는데 엄마! 제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 하루에 두 번 가는 면회 시간마다 기도하듯 어머니에게 속삭입니다.

몇 해 전부터 치매 증세의 하나로 어머니는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핀잔을 들었지요.

“아까 한 말이잖아요. 벌써 일곱 번 째야.”
타박을 할 때마다 어머니 눈빛은 불안에 떨며 얼마나 흔들렸는지 모릅니다.
늙어가는 그 모습을 애써 부인하고 싶어서 어머니께 타박을 했던 제 못난 이기심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그 때 좀 더 많이 들어둘걸, 어머니 음성 좀 더 곧이듣고 맞장구를 많이 쳐 드릴 걸, 돌이킬 수 없는 세월입니다.
평생을 할 말 제대로 못하시며 살아오다가 늙어 치매라는 걸 빌려 저렇게 많은 말씀을 하신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아보았으면…. 그 몇 년 사이에 어머니는 할 말씀을 다 해보고 싶었을 텐데.

어머니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까 한 말이잖아요.”하고 우리가 핀잔을 줄 때마다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엄마! 자라면서도 우리 자매는 아버지를 더 따르고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지만 어머니 삶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얼마나 우리 부녀 사이가 부럽기도 하셨을까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아닌데 전 엄마를 그저 외롭게 했어요. 깨닫고도 바꾸지 못한 마음, 이렇게 용서를 빕니다. 정말 잘못했어요. 엄하신 아버지에게는 수도 없이 했던 말, ‘잘못했어요.’ 엄마에게는 그 말조차도 해 본 기억이 없네요.
그만큼 저희들을 나무라시거나 잘못을 채근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어진 성품 때문이지요.
소나기 지나간 뒤 달팽이 한 마리가 기어갑니다. 목회자의 박봉으로 저희들을 키울 수 없어 포도밭을 일구셨던 어머니. 어느 비 오던 날, 우비도 쓰지 않고 위험한 찻길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던 어머니의 그 모습입니다.
하굣길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보았는데 어머니는 그 때 빗물이 눈을 가로막는데도 불구하고 버스를 쳐다보셨지요. ‘우리 딸이 지금쯤 돌아오겠구나, 저 버스를 탔겠구나.’ 하면서 버스 꽁무니가 모서리를 돌때까지 바라보셨을 거예요. 속으로 내 이름 불러보셨겠지요. 내 이름 부르며 또 기도하셨겠지요.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돌렸습니다.
곧 부서질 집을 이고 엉금엉금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어머니 그 모습. 영원히 잊히지 않는 그림입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화인입니다.

달팽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떨굽니다. 움찔하며 다시 기어가는군요. 어머니도 움찔하며 다시 일어나 보세요. 어머니 입술도 어서 움직여 보세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어머니 냄새 맡을 수 있으니까요.
작년 가을에 아버지가 천국 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네 엄마가 잘 여물었구나.” 기억하시지요? 엄마! 천국에 가실 때까지 잘 여물어 가셔요. 저희도 단단히 여물어 갈게요.

아버지께선 어머니 그때 모습 곱게 기억하고 계셨다가 훗날 만나면 금방 알아보실 거예요.

여전히 곱고 맑은 엄마. 꿋꿋이 버티어 주세요. 어머니가 버티시는 만큼 저희 네 자매도 철이 들어가는걸요. 내일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보실 어머니. 그러나 언젠가 내 이름 불러주실 우리 어머니. 꿈속에라도 오셔서 내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
사랑해요, 나의 엄마!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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