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준비도 없이 소낙비를 맞는 기분은 어떨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디 몸이라도 피할 곳을 찾아 빨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소낙비를 맞을 때가 있다.
2년 동안 늦깎이 공부를 한다고 바쁘게 생활하다 졸업을 하고 나니 마음 한 편이 허전해졌다. 그 마음을 알았을까? 고향친구가 매일 운동하자고 전화를 한다.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운동을 한다. 얼마 전엔 운동을 마치고 다른 고향친구가 하는 건강원엘 들렀다. 맘 편하게 수다를 떨고 싶을 때면 가끔 들르는 곳이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보고 구수한 옥수수차를 내놓았다.
김천엔 고향친구가 세 명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오랜 만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릴 적 같이 커 온 세월을 고스란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되고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편한 사이다. 별명이 꼬마인 친구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고향엘 갈 일이 별로 없는 친구다. 그리도 빨리 친정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꺼번에 시커먼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거센 빗줄기를 어찌 맞았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맞아야 했을 때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버텼을까? 깜깜한 눈앞을 맨 정신으론 보지 못했으리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연타로 인생의 소낙비를 맞은 친구는 요즘 처연해 보인다. 드라마에서 부부만 나와도, 행복한 엄마와 딸이 나와도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마음의 허한 공간이 많아진다는 말일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긴 터널이었을까? 그 터널을 지나고 나면 밝은 빛이 비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쉽게 나오긴 힘들다. 같이 간 친구도 얼마 전 힘든 시간이 있었다. 점심으로 잔치 국수를 먹으면서도 엄마가 손수 만들었던 칼국수가 생각난다고 눈물을 흘렸다. 구수했던 그 맛이 너무도 그립단다.
친구들에겐 소낙비가 지나간 뒤 찾아오는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낯설다. 비를 맞은 지난 시간들이 건강원을 몇 시간 동안 에워싸고 떠날 줄을 몰랐다. 누구에게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소낙비는 있을 것이다. 우산도 준비 못한 처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보낼 것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다 보니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가늘게 볼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맑은 하늘이지만 조심하라고, 우비 한 벌 자전거에 실고 다니라고 귓속말을 하며 지나간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졌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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