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점점 낯선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그것은 내 고향 김천이 변해서라기보다는 타향살이를 해온 나 스스로가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이런 상황은 정지용 시인이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고향’)이라고 노래한 정서에 이어진다.
고향이 그다지 많이 변해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조금씩 그 낯설음이 더해져 가는 것은 이곳을 지키던 벗들과 가족친지의 모습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점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낯설음의 정서가 더해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 이때의 그리움은 육체적 고향을 그리워하는 홈식크니스(homesickness)를 넘어서 정신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노스텔지어(nostalgia)에 가까울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서 김천 소식이나 김천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객지에서 열리는 동문회나 향우회에 모인 사람들은 추억을 함께 나누면서 팍팍한 삶을 서로서로 위로한다. 김천 사람들만이 쓰는 사투리로 말을 건네다 보면 타지에서 처음 만나는 고향 사람들은 순식간에 오래된 벗이 되고 가족이 된다.
올해 추석 무렵에는 향수보다는 고향 걱정에 젖게 된다. 다름 아닌 얼마 전 지나간 태풍 산바 때문이다. 다행히 십년 전의 태풍 루사보다는 약했으나 경북도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아직 복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곳이 많다고 들었다. 걱정과 기대 속에서 시간은 흘러 어김없이 추석은 돌아왔으니 귀향한 사람들은 저마다 간직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영혼의 위안을 찾을 것이다.
“그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할머니, 어젯밤에는 달이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어요. 오십 년 전 그날처럼,”(‘차례’)이라고 노래한 김춘수 시인의 그리움이 절실히 와 닿는 시절이다. 나 또한 서늘한 바람 부는 타향의 창가에서 “내일 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백석 ‘고야’)는 ‘수십 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삭막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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