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팔짱 끼고 사진 찍던 그 생각이 난다. 노란별처럼 총총 달린 은행잎 사이로 가을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고 참말 따사로웠다. 우린 그날 직접 담근 매실차를 아주 오랫동안 마셨던 것 같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장발장이라고 했고 노래는 ‘올드 블랙 조’를 좋아한다 했으며 시는 법정 스님의 ‘청빈의 덕’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외운다며 직접 낭송해 주셨다. 이마의 주름은 깊었고 꼬부라진 허리에 손은 억새풀 같았지만 그의 눈은 항상 반짝 거렸다. 일주일에 한통씩은 꼬박꼬박 주고받던 이메일을 통해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글은 ‘지금 하십시오’였다.
“할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어제는 이미 당신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늦습니다.”
예쁜 편지지에 또박또박 한 글자씩 띄어쓰기를 하며 ‘고귀한 당신께’라는 제목도 잊지 않고 그렇게 보내오셨다. 그러고는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왠지 궁금하기도 하고 추석도 다가오고 해서 전화를 드렸다. 휴대폰도 사무실도 벨소리만 갈 뿐 몇 번을 걸어도 받질 않으신다. 이상하다. 이심전심이었을까. 그다음 다음 날 다른 사람의 이메일을 받았다.
“조 원장님 별세. 장기와 시신은 모두 해부학 교육용으로 기증하였으며 따로 장례식도 치르지 않으니 각자 마음으로 명복을 빕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그래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셨지. 언제나 장미꽃이 아니라 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으로 살겠노라 하셨지. 흙에게 주고 아이들에게 주고 그 사랑까지 모자라서 마지막으로 장기 기증을 하여 70명에게 새 생명 나눔 운동까지 하신 게지.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한참동안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았다. 저 곡식 한 알처럼 알알이 영글어 누군가를 위해 쓰임이 아름다워 보인다. 대통령으로 사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름 없는 촌로로 사는 것도 더 없이 훌륭한 것 같았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라고 사무엘 울만은 말했다. 70평생 청춘으로 살다 가신, 아니 70명의 생명으로 태어나신 조 원장님께 우표 없이 이 편지를 보낸다.
산다는 것! 그 누구도 종착역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우리네 인생을 묵, 찌, 빠 인생이라고 했다. 묵은 태어날 때 주먹 쥐고 “응애응애” 우니까 그렇고, 찌는 눈만 뜨면 제 흉은 감추고 남의 험담만하니 그렇고, 빠는 죽을 때 빈손으로 가니 그렇다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고 그렇게 살 순 없을까. 갖지 못함을 불평하는 대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또 가을 햇살이 너무 찰랑댄다. 은행잎은 샛노랗게 물들 것이고 가을 하늘에 코스모스가 더 없이 한들거린다. 장독 뚜껑을 열어두어야 따뜻한 햇살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맛있는 장맛이 되는 것처럼 우리네 마음의 뚜껑도 활짝 열어두어 가을햇살을 차곡차곡 담아보기로 하자. 오늘 이 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바로 내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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