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적이다 보니 남을 돌아봐 생각하는 일들이 아주 소원해졌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사회 현상으로도 충분히 감지하고 직접 느낀다. 학생들이 공부라는 시험대에 서 소수점 이하의 아주 적은 점수라도 더 받으려는 경쟁의 대열에 있으니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공책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그보다 더 전진한 것이 공책을 아예 찢어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젠 손전화가 발달되어 기기 속에 사진 촬영 기능을 갖고 있어 찍어 가는 것이 더 편리한 점이 됐다. 하기는 그 공책을 훔쳐가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이런 아이들에게 진정 인성 교육이 꼭 필요한데 교육과정이라는 틀이 점점 더욱 한쪽으로만 고착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흔히 지금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하고 있는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것도 그 속내를 살펴보면 자율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세상이 하도 변화가 빨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우리들이 쓰는 언어의 왜곡 또한 무척 심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로만 한다면 70~80대 할아버지들이 아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야간 자율 학습이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동의서를 받아 실시하고 있지만 교육계이 높은 어른들도 그것이 근본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진정 아이들이 저 하고 싶은 공부를 선생님이 조금은 타율적이지만 지도 밑에서 그야말로 ‘자율’로 해 간다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선생님들이 먹고 난 뒤의 식판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먹을 양만큼 덜어오기 때문에 가져온 음식 모두를 한 점 남김없이 깨끗이 비우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난 식판을 보면 김치나 깍두기도 많이 남기고 심지어 밥과 다른 반찬류들을 남기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오늘도 점심을 먹으며 또 그 버릇, 먹고 난 뒤의 식판을 보면서 아직도 정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혼자 느낀다. 선생님들을 위해서 국을 퍼 담아 먹으라고 대접을 준비해 둔다. 나는 그 그릇을 사용하지 않고 식판의 국 퍼 담는 곳에다 퍼 담아와 먹는다.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스님들의 공양의 ‘예(禮)’를 보고, 음식물 쓰레기를 남김없이 깨끗이 처리하는 것을 닮고 싶어서인데 이렇게 하는 작은 한 행동이 스님들이 그를 통해 결국 도를 닦는 하나의 길이기도 하거니와 무릇 이 지구를 살리는 작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따로 국 대접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식당에서 일하는 이의 손길이 한 번이라도 덜 가게 해 노동하는 양을 줄이는 데 도운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이 아주 작은 나의 작은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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