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은 매화가 벌써 피었다. 지난 밤 내린 비에 어느 꽃이 먼저 잘난 척 할지 막 피어나겠다. 우수가 지났으니 이제 봄이다. 이제부터 우리의 질투는 같은 성별에서 같은 것으로 끝이 없겠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든 비싼 옷을 입고 다니든 남들한테는 그리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한 라이벌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을 느낀다.
딸이 어렸을 때는 남보다 뭐든지 잘 하길 바랐고 잘 하면 그저 좋을 따름이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 질투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우리 모녀가 나란히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웃으며 큰딸이라고 한다. 그런데 던지는 말이 나를 닮지 않아 성공했다는 건 또 뭔가. 딸은 키가 나보다 크고 얼굴도 예쁘고 피부도 좋다. 싸구려를 걸쳐도 싸구려 티가 나지 않고 여성스러움이 줄줄 흐른다. 반대로 나는 키도 작은 편이고 몸매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니 외모가 좀 딸리는 편이다.
대학 다닐 때 딸은 영어 과외로 용돈벌이를 했고 홈쇼핑으로 옷을 자주 사 입는 것이었다. 치수라도 비슷하면 같이 입기라도 할 텐데. 게다가 딸이 집에 있을 때 화장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 비교가 된다. 화장술이 뛰어나고 부드러운 손은 물도 안 묻히고 사는 마네킹 손 같다. 손톱에 색색의 매니큐어를 바르면 내 손은 내놓지도 못한다. 끼고 걸치는 것도 많고 화장품도 뭐가 그리 많은지 한창 멋을 부릴 때지만 수수한 나는 딸 앞에 주눅이 든다.
머리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풍부한 아이디어 뱅크다. 집중력이 뛰어나 놀 것 다 놀고도 시간 투자 적게 하고 먼저 자 버린다. 나는 노력파고 경험뿐이다. 시간도 더 걸린다. 딸은 그래도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외모에 천사 표를 보내며 “엄마는 왜 못 생겼다고 생각하세요? 예쁜 얼굴이라니까요”한다. 그 말에 그만 홀딱 넘어 가 “그렇지”하고 웃음을 보내 준다. “엄마가 멋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멋 내 봐라 뒷감당 안 된다니까”
난 딸의 모든 조건을 부러워하는데 딸은 반대로 나를 부러워한다. 모녀에서 학교 선후배이자 이젠 라이벌로 가고 있으니 한 배를 타고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딸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고 흉내 내지만 나한테는 ‘꼼짝 마라’이다. 특히, 도마 위 칼질에 반해 버린다.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하셨어요?” “하다 보니까 손에 익숙해서 그렇지 처음부터 잘 할까.” 무슨 요리를 할 때 가르쳐 준다 해 놓고 금방 해 치우면 “엄마는 가르쳐 준다 해 놓고 히~잉”한다.
“그건 나만의 비법이니 쉽게 안 가르쳐 주지. 네 스스로 하다 보면 몸에 배는 것이지. 하지만 속마음은 안 그런 것 알지.” 딸은 어깨 너머로 봐서 인지 몇 년째 원룸생활을 잘 하는 편이다.
또 나한테 약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운전이다. 운전 경력 17년의 총알택시 기사나 다름없는데 어찌 질투를 안 느낄까. 딸이 집에 있을 때 주행연습을 시키려고 운동장에 가서 기본부터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니 겁도 덜 먹고 자신감도 좀 붙는 것 같아서 좌회전만 계속하다 우회전을 하자고 하니 그만 집에 가자고 한다. 그 이후로 운전면허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놀고만 있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엄마는 돈 걱정 안 하고 마음대로 쓰고 살아서 좋겠다는 것. 그건 속 모르는 소리다. 매일 질투를 느끼는 딸이지만 얼마 전 대구 명문학원 영어강사로 취직해 사회인이 되었다.
4살 때 받침 있는 한글은 물론 알파벳 대소문자를 다 읽기에 심심하면 데리고 나가 거리의 간판을 읽게 했다. 우연히 OPEN을 보고 읽어 보라고 했다. “문을 열다”라고 뜻을 가르쳐 주니 그때부터 영어에 관심을 보였다. 딸에게 재미로 가르쳐 준 것뿐인데 아는 만큼 자신 있게 무대에 서는 딸이 또 부러워진다. 나도 무대에 서고 싶지만 영어는 아니라서 참으련다.
늘 희망인 딸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지만 지금 엄마가 네 나이라면 참 좋겠다. 내가 받아 보지 못한 혜택을 대신 내 종합선물에겐 한없이 투자하고 싶다. 우리 모녀 앞으로 계속 라이벌로 가지만 서로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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