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억수로 퍼붓던 7월 마지막 날 친구의 소개로 우리 두 사람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다. 우린 애틋하게 좋아하면서도 개성이 너무 강해서 참 많이 싸웠다. 연애 시절 유행하던 노래 중 김수희의 ‘멍에’가 있다. “사랑의 귀로에 서서…”란 이 노래는 구구절절 나를 위해 만든 노래란 공감대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오랜 연애담을 노처녀 지인에게 털어놓았을 때 하던 말은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 사랑한다는 것이 꼭 부러움의 대상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이 참아야 하고 인내해야 하기에 달콤한 사랑 뒤에는 아픔도 함께 하는 것 같다. 철없이 부모님의 속을 뒤집은 사랑 끝에 내 반쪽의 군 재대 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린 결혼을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기에 종종 부딪히면서 제 2의 웬수 같은 사랑을 이어갔다 때로는 후회를 하면서, 때로는 애들 때문이란 말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면서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면서 열심히 달려왔다. 어느새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들, 심리학을 전공하는 딸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내 반쪽의 “일찍 결혼해서 후회된다”는 그 말도 조금의 방황 끝에서 막을 내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팔불출이 되어 주었다. 뉴스에서 생활고를 비관하고 성격차이로 인한 이혼과 자살을 이야기할 때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조금 더 손해 보는 인내심만 있다면 그 모든 일들이 예방될 텐데 말이다. 가끔 아이들 사는 걸 들여다 볼 기회로 여행을 생각하면서 길을 나설 땐 우린 들뜬 마음이 된다. 지나간 옛 기억을 주고받으면서 철이 들어간다. 내 반쪽이 얘기한다. “우리 두 사람을 사과로 치면 수확의 계절에 접어든 꿀 사과가 아닐까?”라고. 난 웃으면서 말한다. “나 같은 마누라를 어디에서 당신이 만날 수 있을까!”라고. 내 반쪽은 “그래 그렇고말고”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데 아직 철이 덜 들어 그렇게 대답 못해 미안하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눈으로 말했다. “나의 반쪽이 되어 주어서 참 많이 고맙습니다. 참 많이 감사합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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