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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백승한(수필가․순천제일대 교수)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3년 06월 14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법정 스님의 ‘비 오는 새벽에’ 중 한 구절이다. 스님 말씀처럼 한 평생 이 세상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꾸미고 계시는 분이 내게는 한 분 계신다. 하필 그 분과의 인연은 비가 오는 날 시작되었다.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고교 시절, 내게는 비만 오면 나타나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그것도 한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만 유독 그 버릇이 떠올랐다. 한 시간 내내 선생님의 열정어린 강의 목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분위기 잡고 내리는 빗줄기를 인테리어 삼아 습작을 했던 것이다. 뭐가 그리 아프고 힘든 사연들이 많았을까? 공책 몇 장을 순식간에 채워 어린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곤 했었다.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며 몸도 마음도 고달팠던 현실을 벗어던진 채, 때로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또 백마 탄 왕자님이 되기도 했던 짜릿한 기억들을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가끔 떠올려본다.

세월이 흘러 나도 그 시절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고 또한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비가 내리면 많은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념에 휩싸이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애써 외면하며 어느 때보다 판서에 집중하는 내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도 한참 시간이 흘러 비오는 어느 날, 그 시절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어깨가 축 처진 가엾은 제자를 위한 귀한 배려였다는 것을 나 역시 지금의 학생들에게 그 깊은 마음을 내리 사랑으로 전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끔 드라마 같은 일들이 펼쳐진다. 몇 해 전이던가, 항상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만 지닌 채 언젠가는 꼭 한번 봬야겠다고 다짐만 가졌던 은사님께서 예고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 동료교사 몇 분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남도여행을 오시면서 3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의 안내로 잠시 들리신 것이다. 물론 그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사연들을 전혀 모르고 계셨다. 하지만 잠시 동안의 방문이신데도 몇 권의 책을 선물로 준비해 오셔서 고향에서 멀리까지도 제자가 살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며 훌륭한 스승이 되라고 격려해주셨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편하고 뭔가 기대고 싶은 어머니처럼 자상하신 성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선생님께 지난 사연들을 고하고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굳이 지난 시절 일들을 들추어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늘 먼저 안부 챙겨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시기에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베풂과 나눔이 일상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곧 비가 쏟아질듯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갑자기 뭔가 써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하지만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배경은 있을지언정 그 시절 낭랑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지만 선생님의 하늘같은 제자 사랑은 그리워진다. 먼저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3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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