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을 은퇴하고 난 다음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눈뜨기가 무섭게 화장실에서 아침신문 대충 읽고 씻고 옷 입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차고로 뛰어가던 모습들에서 아침이면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느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아침운동이랍시고 아파트 뒤 동산에 오릅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만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는 꽤나 울창한 숲이었는데 누에가 뽕잎 갉아먹듯 언덕이며 나무들은 야금야금 먹혀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는지 언덕의 등성이에 신작로가 생길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조그만, 평평한 구석이라도 있으면 울타리가 처져있고 거기에 상추며 가지, 파, 고추 등 채소밭이 만들어지고는 아침마다 그곳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뒷동산은 매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가쁜 숨을 내쉴 수 있고 땀이 가득한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훔쳐낼 수 있는 곳이 우리 동네 뒷산(언덕)입니다. 언덕을 오르면 운동기구가 차려져있는 곳에서 두서넛이 정담을 주고받을 수 있고 숲속에서의 아침을 맞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둘레길입니다. 그런데 언덕에 오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느끼는 미안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길가에 산딸기가 줄기만 있고 열매는 누가 가졌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눈에 띄는 것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 흔적이 안타깝구요. 그와는 다르게 또 다른 곳에서는 뱀 딸기의 빨간 색은 요염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산딸기와 먹지 못하는 뱀 딸기의 모습이 사람의 욕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산속에서, 산의 주인들의 먹을거리를 사람들이 자기의 것인 양 가져간 게 틀림없습니다. 숨어 보이지는 않지만 청솔모와 다람쥐가 자기의 밤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원망스레 보고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다시 느끼며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깁니다. 참 많은 사람이 다녔으니 그렇겠지만 길에는 나무의 뿌리들이 상흔이 허옇게 드러나고 그 상처를 사람들은 오르막 내리막 계단처럼 밟고 지나갑니다. “아야, 아야”라고 소리치는 듯합니다. 이리 넓은 길을, 물이 내려가는 골짜기를 하루 거르지 않고 숱한 사람들이 밟고 또 밟았으니 뿌리의 연한 속살이 닳아 반질반질하게 되고 할머니 정강이 같이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마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가 막힙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노래라구요. “사느~은 게 사는 게 아냐~” 뿌리를 계단으로 내준 나무가 이 노래를 부르는 듯합니다. 뒷동산에 오르면서 거대한 산을 등반하듯, 고지를 점령하듯 쇠지팡이와 등산화로 밟는 허옇게 들어난 뿌리가 말입니다. 잔치마당인줄 떼를 지어 행군하듯 하며 끼리끼리 모여서 떠드는 소리나 철지난 유행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는 거미며 나비, 벌, 청솔모, 다람쥐 등 주인인 작은 벗들을 자꾸만 숨게 만들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라 한탄하는 소리를 토하게 하는 듯합니다. 오늘도 주어담은 쓰레기 봉지가 하나 가득합니다. 매일 같은 길로 다니는 데, 이 같이 매일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언덕 산속 텃밭에 가꾼 상추며 파, 가지, 고추를 수확하여 들고 가는 마음은 작은 수확의 기쁨이라지만 쓰레기로 가득한 봉지를 숨겨가는 마음은 큰 실망의 아픔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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