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옷을 입고 매무시를 다듬고는 학교에 출근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렇게 출근해서는 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삶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오늘의 작은 동심원인 나이테 하나를 그려낸다. 이어서 내일을 위해 밝게 뻗어나갈 작은 부름켜를 키울 생각으로 골몰한다. 수필을 쓴답시고 어떤 소재로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생각을 정리해서 아름다운 글로 읽는 이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글을 읽으면서 ‘~답다’라는 어미를 살려 쓴 글을 읽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 ‘노릇’이라는 말이 인상에 박혔다. 내가 그리는 작품에서 이 두 낱말을 살아가는 데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가 이루어지다 보니 남이 하는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람살이에서 직업적인 특성이 있다 보니 그에 어울리는 행동과 처신이 필요하다. 선생으로 40여 년을 살면서 선생답게 제대로 선생 노릇을 하고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직업적 특성에 맞게 어울려 짝이 되어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제 격에 맞는 그 일에 딱 맞는 전문가답게 직분을 제대로 노릇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은 어떻게 생각하면 저 혼자 독립된 개체로서 홀로 제 몸을 움직이며 무척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며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삼라만상과의 관계도 서로 잇대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인 듯 보이지만 우선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집안의 아들(딸)로 존재하면서 동네 사람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나아가서는 지구인이고 하지만 우주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있게 된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엄청난 큰 기적이다. 내가 존재하게 된 여러 요소들 중에 어느 작은 무엇이 비끌어졌어도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존재하게 된 나의 존재적 가치의 중요성을 따지면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너무나도 귀중하고도 존재 가치가 높아 값으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말이다. 어느 철학 교수가 쓴 얘기책을 읽었다. ‘메아리’라는 제목의 동화책이다. 소녀와 아버지가 숲속을 산책하다가 즐거이 재잘대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으앗”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산 쪽에서 “으앗”하는 소리가 들렸다. “겁쟁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똑같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 때 아버지가 미소를 띠고 “아빠가 하는 거 한 번 볼래?”하더니 큰소리로 “좋아해!” 외쳤다. 그러자 돌아오는 소리도 “좋아해!”. 아버지는 또 소리쳤다. “넌 멋져!”, “넌 멋져!” 소녀는 무척 놀랐다. 그러나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랬다. “얘야, 저건 메아리라는 거야. 네가 소리치면 사방으로 퍼지다가 높다란 산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거란다. 메아리는 우리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해. 너한테는 어려운 얘기일수도 있겠다만 인생은 항상 네가 준 것을 되돌려 준단다.” 동화에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어 내 인생이 한층 더 성숙하게 되었고 더욱 가멸게 풍성해졌다.
사랑을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할 것이고 정을 느끼고 싶으면 내가 더 많은 정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우리 인생은 우연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 행동을 그대로 투영되어 반영하는 거울인 셈이다. 퇴임하고 나서도 내가 하는 행동을 비춰 보여주는 거울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게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내 욕실에 면경이 더러워지기 전에 항상 말끔히 닦고 닦듯이 내 마음의 거울을 닦는 수행을 계속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이와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나를 돌아볼 기회를 삼아 내가 진정 인간다움과 나의 위치에 맞는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아직도 남은 내 여생, 앞으로도 선생답게 선생노릇을 잘 할 수 있게 도를 깨치듯 닦고 닦아야 한다. 매일 거울을 닦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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