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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네에 살았고 초중고 9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가 어릴 적 흑백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내 머리 속에서도 희미한 그 시절이 궁금하여 장롱 위 상자에 담아 놓았던 사진첩을 꺼내 추억 속을 더듬었다. 내 얼굴을 내가 금방 못 알아볼 만큼 삼사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등학교 2·3학년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은 재작년 인근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셨다는데 내가 알았을 적에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셔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친구들이 한 번 찾아뵙자고 성화다. 누구에게나 가장 기억에 남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최 선생님은 이 년이나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다. 갓 결혼한 새신랑 선생님으로 날마다 옷을 바꿔 입으시는 멋쟁이셨다. 성품도 온화하고 따뜻했던 조용조용 하셨던 천상 선생님이셨다. 총각선생님을 제치고 모든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선생님. 옆반 담임선생님도 신혼의 선생님으로 연배가 같아서 두 분이 친하셨다. 틈만 나면 우리를 앞세워 반 대항 게임을 하셨다. 농구, 배구, 피구, 핸드볼 등.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축구였다. 우리나라에 여자 축구팀이 생기기전이었다. 우리 담임이 교장선생님께 허락을 받으러 가셨는데 우리나라 여학생들 중에 축구 한 이력이 있느냐고 물어 보셨다고 한다. 두 분 담임선생님이 주장으로 팀에서 뛰셨다. 그 때 내 포지션은 우리 반 수문장인 골키퍼를 맡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여학생들의 축구시합, 전교생이 수업을 하다가 말고 창문으로 내다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교무실 창문도 활짝 열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얼굴을 내밀고 여학생들의 축구를 지켜보았다. 공을 따라 물고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공을 차는 횟수보다 번번이 헛발질로 운동화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기 일쑤였다. 뽀얀 흙먼지를 뒤덮어 쓰면서도 하얀 이를 드러내 깔깔 거리며 비지땀을 쏟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서만 복작 거리다가 게임이 끝났고 골기퍼는 공을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문만 지킨 수문장으로 승부는 무승부였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난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잘 했다. 대신 음악, 미술, 서예 같은 예술에는 재능이 없었고 못하여 죽을 맛이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고 풍채가 좋으셨던 송 선생님은 유명 여배우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수학과 한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셨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그 외에도 총각 선생님이셨던 강 선생님, 우리 팀과 친했던 학생부장 선생님, 그 시절 이후로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어디선가 멋지게 잘 살고 계시리라. 굴러가는 돌멩이만 보아도 깔깔거리고 바람에 낙엽만 져도 눈물이 났던 시절, 친구들도 보고 싶고 우리들의 미래를 걱정해 주시던 선생님들도 보고 싶고… 그때가 눈물겹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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