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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이란 지체가 높은 부인을 말한다. 원래 귀부인이란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서 나온 말인데 결혼과 출산을 관리하는 기혼 여성의 수호신이란 뜻이다. 서양에서 노블레이디(Noble lady)로 불리는 귀부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편의 작위가 남작 이상의 5등작에 속할 것은 물론 부인으로서의 고결의 의무와 외모의 우아함까지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귀부인이 되고 싶고 또한 자신이 귀부인이라 착각하는 현상을 ‘노블 레이디 신드롬’이라 부른다. 착각이야 자유겠지만 실제로 지난 역사 속의 귀부인 중에는 그러한 고결과 우아함과는 거리가 아예 먼 귀부인 아닌 귀찮은 부인도 많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귀인(貴人)이라 불렸던 내명부 종1품의 작위인 왕의 후궁을 둘러싼 음모와 쟁송이 끊이지 않았고 하이든의 교향곡 ‘놀람 교향곡’은 음악회장에서 흔히 잘 조는 런던의 귀부인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제2악장의 느린 연주에서 갑자기 팀파니를 수반하는 피아니시모를 내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걸 보면 자신의 인품과는 무관하게 남편 하나 잘 만나서 귀부인 소리를 듣고 사는 여자를 그리 너그럽게 보지 않는 것은 동서(東西)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제도의 모순에 대해 신랄한 풍자와 비판적 작품을 발표해 온 ‘찰스 디킨스’가 명예훼손 혐의로 런던의 법정에 제소됐다. 한 백작부인을 공개석상에서 돼지라고 불렀기 때문인데 그는 법정 진술에서 ”귀부인은커녕 미련하고 먹는 것만 밝혀, 돼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돼지라고 부른 것은 자신의 작가적 양심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무죄”임을 주장했으나 법관은 그에게 유죄를 인정,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에 승복한 그가 법관에게 물었다. “법관님, 그럼 돼지에게 귀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돼지가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고 설령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도 귀부인이라 불러 주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또한 돼지에게는 인격이 없으니 돼지에게는 귀부인이라 불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법관은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즉석에서 원고측 좌석에 앉아 있는 백작부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귀부인님! 그럼……”하며 꾸벅 절을 하고 법정을 빠져나가자 법정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 백작부인은 법원에 스스로 제소를 해서 법원으로부터 공인된 돼지가 되고 만 셈이다. 재산과 지위에 따라 명사도 되고 귀부인도 될 수 있겠지만 인격이야 어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겠던가? 우리의 주변에도 귀부인이라는 허명을 좇아 인격의 함양은 아랑곳 없이 이어링이며 문신에다 콜라겐과 성형 따위로 분장된 천박한 인두돈육(人頭豚肉)의 노블 레이디의 길을 가고 있는 귀신같은 귀부인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 같다. 비싸지는 않지만 단정한 옷차림과 자애로운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천박하지 않은 우아한 지성미에서 우러나오는 달빛 머금은 박꽃 같은 귀부인상을 이 시대에 그려보는 것은 나만의 무리한 환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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