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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추세로 노동이주, 국제결혼이주 여성의 유입으로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다. 2006년도에 한국정부는 ‘다민족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외국인 150만 명, 결혼이민자 20만 명의 도래로 전체 인구의 5%가 되면 다문화사회로 본다. 학자에 따라서 총인구의 3%이상이 되면 다문화사회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대전만한 도시인구가 외국인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면 놀랄 만한 일이다.
국제이주의 여성화는 돌봄 노동이나 재생산 노동의 한 방편으로 한국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한 인구정책, 결혼이나 가족유지가 목적인 국가가 결혼에 개입한 특수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국제결혼의 흐름을 살펴보면, 1980년대 말 정부 지자체에서 관주도하에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으로 중국 조선족 여성들과의 결혼으로 시작 되었다. 그 이후 1992년 한중 수교이후 조선족 여성들이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을 매개체로 대거 들어오면서, 위장 결혼 등의 문제를 야기 시켜 농촌총각을 울리기도 했었다. 그 후, 외모가 비슷하고 언어소통이 가능하여 한국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악용하여, 결혼의 진정성을 해치는 사례들이 발생하자 한국 신랑들의 선호도가 변화였다. 1990년대 말 무렵, 외모도 다르고 언어소통도 잘되지 않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결혼시장에 들어와서 붐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한국사회의 다문화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다문화주의 정책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 대상으로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 국제결혼이 전체결혼인구의 10%가 되었다. 여성들의 고학력, 사회참여, 전문직 여성의 증가, 경제적 독립, 능력 있는 여성들의 독신주의 선호 등의 영향으로 인해 남성들의 결혼에 노란불의 경고등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의 일환으로 도입된 국제결혼정책이, 지금은 도시의 근로자, 재혼자, 만혼자, 일부 능력 있는 남성들의 어린여성 선호 등의 추세로 국제결혼의 보편적 흐름이 시대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결혼이민자여성들이 한국사회의 주류계층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들도 더 이상 경제적 약소국가에서 온 불쌍한 이민자가 아닌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먼 나라에서 온 능동적인 행위자의 주체자인 것이다. 최근에 이민자단체 15곳이 참여한 글로벌 커뮤니티 협회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한국국민이 역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 기여에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 국빈으로 방문했을 때 베트남 주석 쯔언떤상은 한국을 ‘사돈의 나라’ ‘혈연의 나라’ 라고 반겼다. 한국에 시집온 이민자 여성 중 베트남 여성이 3만 9000명으로 가장 많다.
13세기말 고려 고종때 베트남 리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왕위찬탈로 반란이 일어나자 황해도 옹진에 보트피플로 피란 온 것이 현재 화산 이씨의 시조이다.
단일민족이나 혈연주의에 익숙한 한국사회에 불어온 다문화의 바람은 많은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진정한 다문화주의는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소수민족을 끌어안는 포용력과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도록 키워야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프랑스 니콜라사르코치 대통령도 다문화가정의 대통령이다. 21세기 미래에는 어떤 민족이 우리의 지도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훌륭한 지도자의 엄마가 결혼이민자 여성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 다문화의 뿌리이며 모태인, 결혼 이민자여성들의 사회전반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 평가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