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i김천신문 |
날씨도 추운데 미경이가 연락도 없이 왔다. 엄마 아빠가 모처럼 쉬는 날이라 친정집 오듯이 불쑥 들렸단다. 두 살 동생은 따박따박 걷는데 아홉 살 누나가 아직도 휠체어를 타고 눈만 깜빡이며 들어온다. “미경아~” 이사 간지 삼년 만에 보니 정말 반가웠다. 바비인형 같은 우리 경이는 매일 아침 분홍색 원피스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분홍색 신발을 신고 왔었지. 그 뿐인가 호두며 잣이며 전복에 인삼까지 몸에 좋다는 건 다 갈아서 죽으로 끓여 보내셨는데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까지 가누지 못하는 경이에게 죽 한 숟가락 먹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축 쳐진 아이를 끌어안고 목을 뒤로 젖혀 거즈로 혀를 잡아 당겨 그 위에 죽을 올리고 혀를 다시 말아 넣어야 하니 어찌 애가 타지 않겠는가. 그것도 삼키는 힘이 없어 서너 번 넣어야 간신히 한번정도 넘어가니 그때마다 교사들은 박수를 치거나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아빠가 다 사법고시 출신에다 현재 판사 검사를 하고 있으니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집인데 경이로 인해 참 많은 것을 배운다며 종종 너털웃음을 웃곤 했었다. 우리 경이, 예쁜 경이…… 경이네 가족과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 모두가 한 가지 걱정은 다 있나보다. 지난주엔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선생님과 아이가 일대일 짝꿍을 하며 세상 속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선희 엄마는 또 걱정이 되었나보다. 역에 도착해서 손을 씻기려는데 팔뚝에 매직으로 ‘김천시 부곡동 몇 번지’라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하기야 방향감각도 없고 아무 곳으로나 뛰쳐나가버리는 아이니 오죽했으면 매직으로 적어 놓았을까. 매직을 손에 들고 망설였을 선희 엄마를 생각하니 수돗가 앞에서 가슴이 쏴아 하게 물소리처럼 흘러내린다. 귀여운 우리 아이들. 모기가 와서 문다해도 내 힘으로 쫓을 수도 없고 내 맘대로 말하고 내 맘대로 걸을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헬렌켈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일 삼일간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첫째 날은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 얼굴을 보고 싶고 둘째 날은 산으로 들로 가서 아름다운 꽃들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셋째 날은 부지런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싶고 저녁엔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다 되는 일을 그녀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 우린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가. 내 의지대로 밥 먹을 수 있고 내 맘대로 걸을 수 있고 벌써 다 가졌는데 무얼 또 받고 싶은 게 있을까. 우리 경이에게 단 삼일간만이라도 걸을 수 있게. 우리 선희에게 보통 아이들처럼 듣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은 없을까? 올해도 저물어 간다. 새해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것보다 모든 것에 더 감사하며 더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