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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응어리 병(病)

이우상(수필가·김천문협 부지부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24일

ⓒ i김천신문
조선 선조 때 정승 이항복(恒福)이 조정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이 갑자기 정승의 앞을 가로질러 방해를 하는 순간 길을 전도(前導)하는 하인들이 잽싸게 그 여인을 밀치어 땅에 엎어지게 하고 여인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고는 대궐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이항복은 선량한 백성을 떠밀어 땅에 엎어지게 한 하인들을 크게 나무랐다. 아니나 다를까 화가 풀리지 않은 그 여인이 뒤 쫓아와 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서 “머리 허연 저 늙은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종들을 시켜 죄 없는 나를 길바닥에 넘어뜨려 다치게 했나? 잘못했다고 사과 하시오!” 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정승을 방문한 손님이 한 분 있었는데, 손님 왈 “어느 누구에게 하는 소립니까?” “머리 허연 늙은이가?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바로 나에게 하는 말이지요.” 이에 손님은 정색을 하면서 “아니, 저런 여자를 감옥에 가두지 않고 어째서 그냥 두고만 보십니까?” “내가 먼저 잘못 했으니 그 백성이 성내어 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마음대로 분을 풀고 가야 품고 있던 응어리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실컷 욕을 하도록 시간을 주고 나서는 여자하인을 시켜 방으로 친절하게 안내하고 정승이 정중하게 사과한 후에 돌려보냈다.

손에 잡힐 듯 하는 이항복의 이 작은 실천의 정치철학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응어리’가 뭘까? 우리는 항상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가깝게는 부부간의 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고부간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 친지간의 관계, 이웃간의 관계, 직장 동료간의 관계 등등 얽히고설킨 수많은 관계 속에서 때로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응어리가 생긴다.

기(氣 )와 혈(血)과 육(肉)이 순리대로 흘러가야 하는데 맥락 조화롭지 못하고 그 중의 어느 것 하나라도 맺히게 될 때 ‘응어리’가 생긴다고 한다. ‘기(氣)가 막히다.’ ‘기(氣)가 차다.’ ‘피(血)를 토할 노릇이다.’ 등의 상황이 응어리 대(帶)를 이루어 급기야는 병(病)으로 발전되는 것이 응어리 병(病)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발산하지 못한 불평, 불만, 원망, 탄식, 한탄 등이 모여 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민족에게 이 응어리 병 환자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방예의지국의 민족으로서 무조건 참고 견디고 삭이고 양보하는 것이 미덕의 근본이라고 여겨왔던 풍습에 기인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큰소리로 외쳐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을 발설한 이발사, 정승 이항복에게 용감하게 대든 여염 집 여인의 지혜는 이 응어리 병을 지혜롭게 극복한 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한민족의 고질이 돼 버린 민요 ‘아리랑’의 “날 버리고 가신 님,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라는 말과 같은 여린 응어리로 남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일인데 요즘 세태를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양식 없는 자들의 상대를 향한 막말 단계를 뛰어 넘어 저주스런 말로 인터넷 댓글 난을 난도질 하고 있는 작태를 바라보면 언제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했나 싶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분명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털어내는 스트레스 해소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극도의 패륜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육십 년 만에 한 번 온다는 청마(靑馬)의 해를 맞이하여 제발 온 국민이 작은 응어리 병이라도 훌훌 털고 청마처럼 푸른 광야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으면 싶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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