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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현충일엔 10년 전 출근길에 불의의 사고로 대전 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는 아들(고 박규현 해군대위)을 보러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 현충일이면 많은 유족들이 붐비는 터라 아침 6시에 김천에서 출발했지만 유성IC를 앞두고 밀린 참배차량으로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서야 묘역에 도착했으며 이미 유족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들 묘비가 있는 장교 제2묘역에 도착하니 하얀 국화꽃 화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올해로 십년이 됐지만 아직도 잊지 않고 기일과 현충일에 알게 모르게 꽃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어 큰 위로가 된다.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이 밝지만은 않았다. 얼마나 한이 됐으면 인터넷 ‘사이버참배’란에 “아들아! 엄마는 너의 영혼도 사랑한다”로 시작되는 편지가 이미 천통을 넘었다. 옛말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먼저 가면 가슴에 묻으며 부모가 돌아간 사람은 상주로 부르고 부인을 먼저 보내면 홀아비로, 남편을 사별하면 과부라고 부르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그 슬픔이 한이 없어 어떤 말로도 표현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기도를 마친 우리는 유족 몇 분을 만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같은 묘역에 있는 김천 어모가 고향인 고 이한기 공군소령 묘소를 거쳐 서해 연평 제2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묘소를 찾아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76세) 연평2해전 유족회장을 만나 안부를 물어보았다. 이곳 현충원은 1979년 조성돼 소관부처가 국방부에서 2006년 1월30일 국가보훈처 소속으로 바뀌었으며 이곳에는 국가원수를 비롯해서 전사․순직한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의사자 등이 안장돼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사회는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를 더 생각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두고만 보지 않고 바꾸려고 애쓴 국가유공자들, 전쟁에서 비굴하지 않았던 그들과 그분들의 가족이 있었기에 희생의 의미는 조금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것이고 군복무에 충실한 군인들이 있었기에 국가와 개인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또한 60만 우리 군의 대열에서 가끔 발생하는 군기문란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할 것이지만 지나친 언론보도로 군의 사기가 저하돼서는 절대 안 된다. 군은 사기를 먹고산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상대방을 질타하고 배척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물질문화의 발달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문화의 발달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제59회 현충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국립 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는 용사들의 조국사랑의 뜻을 새겨보면서 우리는 위기일 때 더 빛을 발휘했던 민족의 저력이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빛이 바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지난 4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의 교훈을 잊을 수 없다. 이제 지방선거도 막을 내렸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 돼 서로를 위해주며 다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세상의 행복조건인 사랑과 이해와 긍휼이 우리 김천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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